한반도에 펼쳐지는 핵무기 전략은 마치 한편의 오페라 같다. 조이고 풀고 내리고 올리면서 때로는 피콜로가 리드를 하다가 느닷없이 북이 터지기도 한다.
1막 - 핵 억제력
미국에 핵무기 연구로 유명한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 국립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의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헥커 일행이 2004년 1월 8일 북한의 초청을 받아 영변 핵 시설을 방문했다.
핵 시설의 일부 장비, 실험시설, 그리고 북한이 생산했다는 플루토늄 금속을 살펴봤다. 상식적으로 핵무기 개발은 극도의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도 북한이 적극적으로 공개하면서 자기들의 능력을 선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핵 억제력이란 말이 그 비밀의 열쇠다.
핵 억제력은 몇 가지 전제 아래 성립한다. 플루토늄 금속을 제조할 수 있는 능력, 핵 탄두를 설계하고 제조할 수 있는 능력, 핵 탄두를 미사일이나 운반장치에 탑재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갖추었을 경우를 말한다.
핵 미사일이나 폭탄으로 목표지점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북한은 자기들이 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미국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북한에게는 핵 탄두의 숫자보다 미국 본토에 정확하게 투하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핵 보복 공격이 두려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북한이 목표하는 핵 억제력이다.
탄도미사일 플루토늄 등, 북한은 하나 하나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퍼즐 맞추기처럼 종합적 억제력을 상대에게 인식시키는 전략을 편다.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의지도 핵 억제력 평가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은 미니 뉴크(Mini-Nuke) 개발을 통해 핵무기 사용 의지를 밝혔다. 이에 대응하는 북한은 실제로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무모한 나라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했다.
2막 - 6자회담
금년 6월말에서 7월초까지 하버드 대 학존 에프 케네디 스쿨의 제임스 월시는 북한의 초청을 받아 13일간 평양을 방문했다.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이 면담을 통해 북한의 7가지 제안 내용을 밝혔다.
4차 6자회담에복귀하기전, 북한은 이미 대미협상안을 미국에게 던져 놓은 것이었다. 이번 6자회담 공동발표문이 그 제안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있다. 북한의 진행수순이 매우 정교하다.
북한이 제안한 내용 중 2번째 항목이 핵무기 포기(Abandon), 핵확산금지협정(NPT) 복귀, 그리고 IAEA 사찰이다. IAEA의 사찰만 받아 들이겠다는 것과 NPT 회원국에게 허용되는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 즉 경수로를 확보하겠다는 의사가 포함된다.
일곱째 항목은 한반도 비핵화다. 이미 핵무기 포기를 결정했다는 암시를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지’라는 말로 표현했다. 북한의 핵무기만 제거한다고 한반도가 비핵화 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를 편다.
미국이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았다고 말로만 선언해서는 믿을 수 없으니 철저히 검증하자는 것이다. 남한의 핵도 확인하자고 나선다.
그리고 비핵화는 동아시아 전체로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에 대한 일본의 확고한 약속이 필요하다고 범위를 넓혔다. 이제는 북한이 핵무기 카드를 거꾸로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숨겨졌던 북한의 의도인지도 모른다.
북한은 남한 인사들을 북한으로 불러들여 메신저로 이용하고 미국의 각계 인사들을 초청하여 협상안을 미리 던지는 등 자신감을 가지고 고도의 전략을 구사한다. 협상 전략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고 6자회담을 주도하면서 미국과의 최종적 담판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이번 6자회담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중국의 높아진 위상에 대해 국내 선전이 요란하다. 4차 6자회담 참가를 설득하기 위해 중국은 고위 사절을 평양에 파견했었다.
그러나 그 사절이 북한에 도착하기 직전, 북한 스스로 6자회담 참가결정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북한이 중국의 팔 비틀기에 끌려가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한국외교의 승리라고 들뜨기에는 아직 이르다. 국내정치 상황과 연계하여 몸달고 흥분하는 것 아닌지 차분히 되돌아 볼 일이다.
또한 북한이 경수로 문제를 언급한다고 여기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잘못 짚은 것이다. 이미 북한이 이렇게 나올 것은 예상하지 않았던가? 북한에게 경수로는 1994년 제네바 북미 직접 협정 때처럼 자존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3막 - 북한과 미국
경수로에 관한 한 미국은 마지 못하는 척 물러서며 그것은 한국 몫이라고 떠 넘길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공화당이 주도하는 보수적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수로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축우라늄 문제로 상당한 진통을 거칠 것이다. 앞으로 꼭 등장할 심각한 안건이다. 북한이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검증하고 폐기할 것인가?
북한이 사용하는 ‘포기’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한다. 공동발표문에도 폐기(Dismantle)가 아니라 포기(Abandon)?표현했고 지난 6월의 대미 제안에도 포기로 표현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북한은 핵 프로그램들을 포기하고 그것을 찾아내 폐기하는 일은 다른 참가국들의 몫이라는 공방이 벌어질 수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가 아직은 쟁점으로는 부상하지 않았다. 재래식 전력문제, 탄도 미사일, 화학무기 생물무기 등 다른 대량살상무기(WMD) 등과 함께 언제든지 수면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로 인해 핵무기 포기를 고리로 북한이 기대하던 북미 관계개선과 경제 협력이 위험해지는 고비도 있을 것이다. 미국은 미국의 논리에 맞을 때까지 끊임 없이 이것 저것의 포기를 북한에게 요구할 것이다.
핵 문제를 북미간의 양자 관계로 파악하는 북한과 동아시아의 지역 문제로만 파악하는 미국 사이에는 커다란 시각과 관념의 차이가 있다. 이 시각차이에 따른 부조화는 앞으로도 북한 핵 문제 해결의 고비 고비에 장애로 등장할 것이다.
4막 -검증
이제 검증의 내용과 절차를 살펴보자. 그냥 북한의 알려진 핵 시설을 해체하고 생산된 물질, 생산한 무기를 폐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첫째, 핵무기 개발 목적, 계획의 수립과정, 참여자, 개발자금은 물론 핵무기 배치계획과 실제 배치내용 등 고도의 정치 군사적 사항들의 검증 문제가 대두 될 것이다.
둘째, 핵무기 생산에 적용한 기술의 종류, 개발기술과 도입기술, 기술 제공자, 기술 제공 경로 등이 있다. 이외에 장비 및 시설의 종류와 수량, 제작 경위와 공급경로, 공급범위, 건물 건축 및 장비 시설 설치과정, 시설물의 구조를 포함한 건축에 관한 상세한 자료, 실험 절차와 방법 등이 모두 검증돼야만 핵무기 생산 능력이 판단된다.
셋째, 실제로 그 시설을 이용해 생산한 물질 및 무기의 종류, 수량 그리고 각종 실험 결과를 확인한다. 원료, 생산 투입중인 수량, 생산 완료된 물질을 계량적으로 조사하고, 보유 중인 물질 및 무기의 양과 생산한 수량이 물량적으로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생산물질과 보관 및 사용했다는 물질이 과연 같은 물질인지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 중에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포함한 군부대, 핵무기가 배치되었을 극비 시설들이 공개될 것이고, 모든 지하ㆍ지상 시설이 드러날 것이다. 혹시라도 숨겨 놓았을 가능성이 있는 곳은 모두 조사 대상이 될 것이다.
이처럼 개략적으로 열거한 내용만 보더라도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한 모든 해외 협력 네트워크 그리고 북한 내의 모든 관련 인원 자료 장소 등에 대한 접근과 검사, 조사 등이 철저하게 이루어 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선 북한 스스로 정확하게 그 자료를 작성하여 사찰단에게 제시해야 한다. 한마디로 북한의 실체와 해외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북한의 국제 협력이 총체적으로 붕괴하고 심각한 외교적 문제마저 야기될 것이다.
그야말로 남한과 미국 등 이제까지 북한이 체제를 위협하는 적으로 삼았던 당사국들 앞에 발가벗고 나서야 하는 것은 물론 모든 시설, 인원, 자료에 대한 사찰단의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
더구나 미국은 IAEA 사찰단을 보강하여 미국의 사찰단을 추가로 더 투입하겠다고 나설 것이다. 북한이 이런 검증 내용과 절차를 순순히 수긍하고 받아 들일 것인가?
국제사찰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IAEA를 통해서라도 검증에 참가할 수 있는가? 우리의 참가를 다른 나라들이 허용할 것인가?
핵무기 검증비용과 폐기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 합의에 이르는 동안 북한은 현재 상태에서 핵 프로그램을 과연 동결하고 기다릴 것인가?
검증비용과 경수로 비용 등 대부분의 경비를 부담하면서도 우리는 철저하게 배제되는 상황이 되면 국민 감정이 이를 수용할 것인가?
시기가 우리의 차기 대통령 선거국면과 맞물릴 것으로 보여 염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마치 판도라 상자의 뚜껑이 열리듯 모든 문제들이 한꺼번에 발생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막이 내려질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윤석철객원 기자 ysc@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