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은 젊음과 성숙의 경계선에 선 나이다. 20대의 열정이 아직 사그라지지 않아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은 나이이면서도, 매일 칼슘을 챙겨먹고 런닝 머신 위를 뛰며 건강에 신경써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때다. 적당히 세속의 때가 묻은 대개의 서른 살들은 ‘서러운 서른 살’을 절감하거나 ‘잔치가 끝났음’을 깨닫고 차분히 앞만 보고 달린다.
외제차를 굴릴 정도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보습학원 수학강사 조인영(김정은)도 여느 서른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동거남과 ‘자기가 수영강사나 트럭 운전사였으면 좋겠다’는 질펀한 농담을 주고 받을 때 그녀에게서 순수함의 원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인영의 가슴 속으로 첫사랑의 외모에 이름까지 똑 같은 열일곱 살 고등학생 이석(이태성)이 걸어 들어온다. 서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돋아난 사랑니처럼, 현실에 발을 굳게 디디고 앞을 내다봐야 할 때 그녀는 순수했던 시절을 되돌아 보며 첫사랑의 환상에 빠져든다.
하지만 인영의 얼굴에는 ‘퇴행’에 대한 부끄러운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학원강사와 고등학생 제자의 위험천만한 사랑임에도 그녀의 행동은 당당하고 대담하다. “나 걔랑 자고 싶다”고 동거남에게 스스럼 없이 말하고 “나 따라올래? 후회 안 할 자신 있어?”라며 모텔로 제자를 데려 간다.
“포경수술 안 한 어른 것 처음 봐. 예뻐” “애는 왜 해도 늘지 않지”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원조교제라는 손가락질에는 자신의 올바른 사랑을 몰라준다며 거리낌 없이 맞선다.
그녀의 행동이 발칙하게 느껴질 만도 하다. 그러나 거부감을 갖기 힘들다. 인영과 이석의 사랑이 과도하게 무겁지도, 참을 수 없이 가볍지도 않아서다. 둘은 서로를 위해 사랑하고 갈등하고 화를 낼 뿐이다. 둘 사이엔 육체에 대한 덧없는 갈망이 틈입하지 못하고, 사랑은 이래야 한다는 눈물겨운 교훈도 구구절절 드러나지 않는다.
앞뒤 재는 게 많을 서른 나이에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과 행복을 찾는 인영의 모습은 어쩌면 관객들이 평소에 억누르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감독은 두 남녀의 사랑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가늠하지 않는다. 열일곱 살 인영을 현실로 등장시켜 시간의 경계도 뭉갠다. 도덕과 부도덕으로 대별되기 쉬운 사랑의 개념도 뒤섞어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없도록 만든다. 경계선상에 놓인 것들의 모호함을 통해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역설적으로 선명하게 보여주는 독특한 서술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해피엔드’이후 6년 만에 신작을 선보인 정지우 감독은 그 동안 만만치 않은 ‘내공’을 쌓았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자극적이면서 선정적인 소재를 성난 파도처럼 격정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잔잔히 물결 치는 이야기로 이끌어낸다.
스크린을 눈물로 적시거나 기승전결이 똑 부러지게 전개되는 멜로 영화의 장르 관습도 벗어났다. 그러나 다소 생경한 화법을 구사하다 보니 관객들, 특히 남성과 코드를 맞추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29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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