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 내 남편은 혈압을 낮추는 존재일까, 아니면 혈압을 높이는 존재일까.
캐나다 토론토대학 연구팀은 지난 24일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심하다 해도 배우자의 지지와 격려만 확고하다면 혈압이 오히려 안정적으로 떨어진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미국심장학회에 보고했다. 이처럼 배우자 관계와 건강이 갖는 오묘한 함수 관계를 파헤쳐보려는 연구는 꽤 많다.
토론토대학 연구팀은 40~65세 남녀 지원자 216명을 대상으로 1년여에 걸쳐 연구를 했다. 3분의 2가 토론토대학 내 외과 의사, 간호사, 관리자, 관리 직원 등이고 나머지가 외부인인데 6개월 이상 배우자와 함께 살고 고혈압이 없는 상태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미 잘 정립된 틀을 이용해 이들의 업무강도, 배우자와의 결속력을 측정하고 혈압을 쟀다.
1년 후 다시 혈압을 측정했을 때 업무 긴장도가 높고 배우자와의 결합 정도가 낮은 이들은 최고 혈압이 평균 2.8mmHg 오른 반면, 업무 긴장도가 비슷하게 높아도 배우자와의 관계가 끈끈한 경우 최고 혈압은 오히려 2.5mmHg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나이가 들면서 혈압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처럼 혈압이 떨어진 것은 주목할만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14일 영국 ‘행동의학연감’에는 결혼 관계에 대한 근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평일 최고ㆍ최저 혈압이 모두 높다는 연구도 게재됐다.
영국 브랜디스대학이 105명의 중년 공무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로, 결국 집안에 걱정거리가 많으면 직장에서도 그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부부관계가 원만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건강하다는 말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갈등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따르게 되는데, 연구결과에 따르면 억누르는 것보다는 표출하는 게 좋다.
2월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제2차 여성, 심장질환 컨퍼런스’에서는 배우자와 갈등을 회피하는 여성이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됐다. 심장질환과 관련해 장기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프래밍엄 후손 연구’에서 17~88세 남성 1,769명, 여성 1,913명을 10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 남편과 싸울 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여성은 드러내는 여성보다 이유를 불문하고 사망률이 4배나 높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상담 임상심리학 저널’에는 배우자가 우울해 할 경우, 화를 낼 때보다 결혼에 대한 불만족도가 더 커진다는 결과가 게재됐다. 미국 7개 주에서 774쌍의 부부를 연구한 결과 남편과 아내 양쪽 모두 우울할 때 결혼에 대한 불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연구팀은 “배우자가 슬퍼하면 자신이 결혼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분석했다. 차라리 화를 내고 풀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무리 부부 금슬이 좋다 해도 늙어 병이 들었을 때 배우자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은 그리 바람직스런 일은 아닌 것 같다. 심장병 환자를 간호하는 배우자가 심장병 위험이 높다거나, 알츠하이머(치매) 환자를 돌본 배우자는 환자가 죽은 뒤까지도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그런가하면 집에서 배우자의 간호를 받는 노인은 남이 돌보는 경우보다 오히려 소홀한 대우를 받거나 학대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함께 살면서 끈끈한 관계를 형성한 부부는, 배우자가 아플 경우 오히려 냉정함을 잃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든 배우자를 돌보지 않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연구는 “개를 키우라”고 권한다. 미국 버팔로대학 연구팀은 뇌 손상을 겪은 배우자와 살면서 심각한 스트레스 상태에 처한 남녀 60명을 조사한 결과, 배우자를 대할 때 최고 혈압이 평균 52㎜Hg나 올랐던 이들이 개를 키운지 6개월 후의 혈압을 측정했을 때 상승폭은 5분의 1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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