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커(徐克) 감독이 중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칠검’은 제목이 암시하듯, 일곱 개의 검(劍)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검을 쥐고 휘두르는 사람 보다는 천산의 신비를 머금고 만들어진 청간(靑干), 천폭(天瀑), 유룡(由龍), 막문(莫問), 일월(日月), 사신(舍神), 경성(競星) 등 각각의 이름과 개성을 지닌 칼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리밍(黎明) 양차이니(梁彩尼) 전츠단(甄子丹) 등 중국을 대표하는 스타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 당연하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사람이 주변으로 전락한 영화의 스케일은 장대하나, 이야기는 헐겁고 공허하다.
명나라를 멸하고 들어선 청나라는 반란의 싹을 자르기 위해 ‘무기를 소지하거나 무술을 연마하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는 ‘금무령’(禁武令)을 내리고 현상금을 내건다. 돈에 눈이 먼 명나라 장군 출신 풍화연성은 그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다니며 애꿎은 사람들의 몸을 찌르고 벤다.
관군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거물로 성장한 풍화연성은 또 한번의 ‘한탕’을 위해 무장마을을 노린다. 명나라 사형 집행인이었던 부청주는 무원영(양차이니), 한지방과 함께 위기에 빠진 마을을 구하려 한다. 천산에서 수련하던 4명의 고수는 이들의 뜻에 호응해 동참하고 ‘칠검’을 형성한다.
‘칠검’은 선과 악을 극단적으로 나눈다. ‘무협’(武俠)의 ‘무’(무술의 구체적인 기술)보다는 ‘협’(무의 바탕에 흐르는 정의구현의 정신)을 강조하며 단순 명쾌하게 권선징악의 주제를 내세운다. 영화는 선과 악이 얽히고 설킨 구조를 택하는 대신 칼이 가진 신비함을 드러내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바람을 가르며 윙윙거리는 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검과 검이 부딪힐 때 토해내는 절규를 담아내는 데 온 신경을 쓴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보다는 검과 검이 합을 더하며 생성하는 시각적 청각적 긴장감에 집중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때문에 죽음으로 끝을 맺는 초소남(전츠단)과 녹주(김소연)의 애틋한 사랑은 가슴을 치지 못한다. 등장 인물들이 제각기 가졌을 만한 기막힌 과거의 사연과 정밀한 캐릭터 묘사도 당연히 배제된다.
검이 춤추며 만들어내는 현란한 이미지는 있으나 드라마는 없다. 한국 중국 일본 홍콩 합작. 올해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을 때보다 30분이 줄었다. 29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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