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의 중국 역사를 보려면 시안(西安)을 보고, 최근 500년의 정치사를 보려면 베이징(北京)을 보고, 150년의 근ㆍ현대사를 보려면 상하이(上海)를 보라.” 중국인들 사이에 전해져 오는 말이다. 이달 초 상하이 푸둥(浦東)경제특구를 다녀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중국의 미래를 보려면 푸둥을 보라”는 말이 유행할 듯싶다. 중국경제에 곧 주도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머리가 주뼛거릴 정도로 발전 속도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610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 현지에서 만난 중국 관리들은 한결같이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외국기업을 유인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자랑했다. 실제 외국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한 푸둥특구의 노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다.
조성원가를 밑도는 거의 공짜 수준의 땅값과 저렴한 인건비는 기본이다. 푸둥 중심부에 10만㎡의 공원을 만들기 위해 3만명의 주민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가 하면, 상하이 최고 명문인 화둥(華東)사범대 부속 중ㆍ고교를 이 곳으로 옮겨왔을 정도다.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를 부르짖는 우리는 어떤가. 인천과 부산ㆍ진해, 광양 등 3개 지역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지 만 2년이 넘었지만, 중앙정부와 자치단체간 이해관계가 얽혀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 인천의 경우 수도권 팽창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와 교육ㆍ노동계의 반발로 외국인 학교와 병원 설립 등 기반시설 공사가 더디기만 하다. 경제자유구역청이 광역단체 산하이다 보니 시의회의 간섭이나 예산ㆍ인사상 제약도 심하다.
경제계 원로들의 모임인 IBC포럼이 최근 경제자유구역청을 중앙정부 직속기구로 개편하는 내용의 특별법 제정을 건의한 것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국가적으로 힘을 집중해도 성공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인데, 지금처럼 중앙과 지방정부에 각종 인ㆍ허가 권한이 분산돼 있는 시스템으론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해당 광역단체들이 “지방화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출범 당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를 요란하게 외쳤던 참여정부도 소극적이다. 장관급 인사가 최근 강연에서 “다수의 지역거점을 동시에 키우는 균형발전전략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강력한 성장전략”이라고 밝힌 데서 경제자유구역 건설에 미온적인 까닭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이 당초 동북아 물류중심을 만들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로 출범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지역균형발전 논리를 앞세워 추진 중인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글로벌 기업은 저렴한 땅값과 인건비, 최고의 생활환경을 찾아 국경을 초월해 이동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을 만든 것도 영국 아일랜드 싱가포르 상하이 등과 같이 각종 규제를 풀어 외국자본을 유치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기계적인 지역균형 논리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입지가 뛰어난 인천공항과 부산항을 진정한 ‘경제특구’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빨리 찾아야 한다. 급속한 고령화가 초래한 저성장구조를 극복하고 참여정부가 줄기차게 외쳐온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배양을 위해서도 경제자유구역의 성공은 필수적이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과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사이에서 고사할 것인가, 우리의 장점을 살려 새롭게 도약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고재학 경제부 차장대우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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