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공개됐을 때 이미 어느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요란한 홍보, 숱한 의미부여에도 불구하고 이명세 감독의 ‘형사’와 허진호 감독의 ‘외출’은 국내흥행에 실패했다.
9일 추석연휴를 겨냥하고 나란히 개봉했지만 지금까지 관객 120여만, 60여만 명에 그치고 있다. 더구나 ‘형사’의 경우 순제작비 78억원인 블록버스터임을 감안하면 ‘참패’이다. 비슷한 돈을 들여 800만 관객을 끌어들인 ‘웰컴투 동막골’과 비교해 보라.
“모르는 소리”라며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다. “해외가 있다. ‘외출’은 주연배우 배용준의 인기를 업고 일본에서 박스오피스 2위까지 오르며 롱런 태세를 갖추고 있고, 홍콩에서도 그런대로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형사’ 역시 일본에 500만 달러(약 50억원), 동남아에 50만 달러(약 5억원)를 받고 팔았으니 제작비는 너끈히 건진 셈이다.”
이런 주장도 가능하다. “이명세, 허진호 감독은 이미 한국의 감독이 아니다. 아시아 넓게는 세계시장을 목표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러니 더 이상 국내 흥행에 애면글면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보고 할리우드 일부 감독들이 감탄했고,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일본과 홍콩 감성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
바로 그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 자체보다는 과거 작품에 따른 기대감이 아시아에서의 인기의 원인일 수 있다. 더구나 ‘외출’은 2년 전 ‘스캔들’(감독 이재용)이 그렇듯 배용준만 나오면 작품의 완성도에 상관없이 무조건 달려드는 일본 아줌마부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음 또한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두 영화는 공통점이 참 많다. 우선 감독이 스타이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과 세계를 갖고 있다는 점,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멜로이며 작가영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이미 드라마로 방영된 소재라는 점. 그러나 무엇보다 뚜렷한 공통점은 감독의 스타일(아니면 고집)이 전작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현란한 비주얼을 숨가쁘게 펼쳤고, 허 감독과 배용준은 감성과잉에 사로잡혔다. 그들에게 “영화는 시”이고, “영화는 느낌”이었다. 의도적인지 능력부족인지 모르지만 그들이 그것을 고집하는 사이 ‘영화는 영화’이어야 할 서사와 플롯이 무너졌다.
그 결과 ‘형사’는 눈은 더 즐거웠을지 모르나 ‘와호장룡’의 또하나의 장점인 이야기의 대중적 재미와 감동을 갖지 못했고, ‘외출’은 ‘봄날은 간다’처럼 여운을 남기지 못했다.
상업영화에도 감독의 스타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영화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스타일지상주의는 결코 대중의 폭 넓은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국내 관객이 외면해도 일본이나 홍콩에서 돈 벌면 된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러면 ‘다음’은 어디에도 없다.
/이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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