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승자 없는 총선으로 자못 혼미한 양상을 보인 독일의 연정 구성협상이 제1당인 기민ㆍ기사연합(CDU/CSU)과 제2당 사민당(SPD)의 대연정으로 마무리될 모양이다.
중도우파 기민당 또는 중도좌파 사민당이 우파 자민당(FDP)과 좌파 녹색당, 좌파연합당 등 소수정당들을 연정 파트너로 삼는 여러 조합을 위한 연쇄 협상이 예상대로 모두 실패하자, 대연정이 마지막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관망하던 여론이 대연정 지지로 돌아선 가운데, 연정 구성권을 다투던 양당 지도부도 잇따라 대연정 수용의지를 표명했다.
●순리 따르는 대연정 타협 전망
기민당의 여성당수 메르켈과 사민당의 슈뢰더 현 총리의 총리 다툼이 남은 듯 하지만 대세는 메르켈 쪽이다. 1966~69년 좌우 대연정이래 두 번째 이고 여성 총리는 사상 처음이다.
올 51세인 메르켈은 첫 동독출신 총리에 최연소 기록도 세울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기록에 앞선 의미는 좌우 두 국민정당이 모두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해 위기에 처한 듯 하던 독일 정치와 사회가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길을 택한 데 있다.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지만, 독일과 주변국 권위 언론들은 진작부터 대타협이 순리라고 지적했다.
이런 결말을 놓고, 먼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반응할 지가 궁금하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느닷없이 내놓은 독일식 대연정 제안으로 한바탕 논란을 벌인 뒤끝이라, 그 독일에서 40년 만에 대연정이 등장하는 것을 무심하게 지켜볼까 싶은 것이다. 늘 그렇듯이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과 주장이 다시 부딪쳐 소란스러울 것이 걱정된다.
독일 언론은 정치세력의 연정 구성게임을 ‘연정 포커’라고 비유한다. 그 연유는 저마다 여러 정당을 상대로 연정 협상을 벌이지만, 늘 진정으로 연대를 모색하지는 않기 때문인 듯 하다. 그러나 진짜 포커 판처럼 속내를 감춘 승부수로 여러 상대를 제친 뒤, 미리 점 찍은 파트너와 정권을 획득하는 게임에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각기 표방한 이념과 정책노선의 타협과 조정 가능성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보이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각기 다른 정당을 지지한 국민의 폭 넓은 동의를 바탕으로 연정을 구성, 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절차인 셈이다.
이번 연정 포커가 혼미했던 것도 단순히 두 국민정당이 전에 없이 낮은 지지를 받은 때문은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은 각각 35,2%와 34,3% 지지를 얻는데 그쳤다. 이에 따라 두 당 모두 8~10%를 얻은 우파 자민당이나 좌파 녹색당과 좌파연합당 가운데 한 정당과 연대해서는 안정적 과반의석에 못 미쳐 이념 경계를 넘는 연대가 필요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민ㆍ자민 연정을 넓힐 수 있는 녹색당은 일찌감치 연대를 거부했고, 기존 사민ㆍ녹색당 연정에 세를 보탤 자민당과 좌파연합당도 이념과 정책차이를 이유로 연정 불참을 선언했다. 모든 정당이 정권 참여보다 정당의 정체성과 지지기반 유지를 우선순위에 둔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연정 포커 패가 돌고 돌아 좌우 대연정에 이른 것을 순리로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좌우 주류정당 모두가 경제회복과 실업해결을 위한 복지감축과 노동시장 유연화, 세제개편 등 신자유주의 개혁을 내세웠다가 유권자에게 거부당한 마당에는 전체 국민의 이해를 두루 돌보는 정책적 타협을 이루는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을 잡기 위해 이념적 스펙트럼의 양쪽 끝에 가까운 소수정당들과 연대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략적 선택이라는 지적이다.
●정권 보다 정당 정체성 우선
이렇게 볼 때 독일의 연정 포커를 마냥 혼미한 이기적 정권 다툼으로 보거나, 연정 또는 대연정의 미덕을 상징하는 듯이 인용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다. 오히려 다양하고 엇갈리는 국민의 뜻과 이해를 정치과정에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이 정치집단의 본분임을 일깨우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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