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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남미서 목격한‘한국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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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남미서 목격한‘한국의 힘’

입력
2005.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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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세종과학기지의 월동연구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국경일을 맞아 눈 덮인 국기게양대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노라면 무언가 가슴 속으로부터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오름을 느낀 기억이 있다. 고향을 떠나 이국 땅을 디디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들 하더니만.

요 며칠 남미에서 국제회의가 열려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방문하게 되었다. 일찍이 남미를 거쳐 남극을 오가다 보니 우리나라에 대한 이들의 인식 변화에 대하여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한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이나 건물 옥상에는 한국 전자제품 광고가 즐비하고, 길거리에 지나가는 자동차의 절반 이상은 낯익은 한국차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처음 남미를 방문했던 1985년, 당시 우리나라에서 기증한 포니 자동차가 택시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자갈이 튀는 비포장 초원지대에 바닥이 높은 이 모델이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꽁무니에 붙어 있어야 할 마크는 없어진 지 오래고, 아쉬운 김에 종이에다 매직으로 포니라 써 붙이고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운전석 옆 문짝이 없는 차도 있었다. 사후 서비스가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슴 뿌듯하기보다는 언제 우리도 제대로 된 국제경쟁체제를 갖추나 하는 아쉬움만 남았다.

세월이 흘러 요즈음에는 현지 판매부터 사후 서비스까지 철저하다. 한국차에 대해 물어보면 누구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전자제품은 또 어떠한가. 80년대 말 상점 한쪽 구석에서 가장 싼 가격으로 간혹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점차 진열대의 복판으로 이동하다가 요즈음은 가장 고가 제품 대열에 버젓이 올라 있다.

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활약은 실로 눈부시다. 한국 제품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한층 커지고 있다.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가 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배경도 단순히 문화계 만의 노력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나라의 경쟁력은 이렇듯 국가, 기업, 문화가 삼박자를 갖출 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내부는 어떠한가. 역사가 유구한 단일민족 국가이면서도 자연사박물관 하나 없는 형편이고, 일반 대중이 문화를 즐길만한 공간 또한 태부족이다.

더욱 장기적인 안목에서 문화 기반을 확충하고, 이를 근간으로 뿌리 깊은 사람과 문화를 키워나가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번화가에서 한국 기업의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정호성 극지연구소 경영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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