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이 26일 ‘사법부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취임 일성으로 거론한 것은 무엇보다 과거사를 털고 가는 것이 사법부 신뢰 회복의 핵심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취임사에서 “여전히 국민과 사법부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며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데는 지난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는 용기와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자간담회를 통해 “시대가 지나면 과거 재판도 되돌아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언급, 사회의 변화가 배경이 됐음을 밝혔다.
그는 프랑스 사법부가 소설 ‘북회귀선’을 음란물로 판결하면서도 ‘20년 뒤에 다시 재판하라’는 단서를 붙였고 실제 20년 뒤에 이 소설의 출판이 허용됐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여기에 “유신 시절 형사재판을 못해봐서 실제 판결이 어땠는지 잘 몰랐는데 최근 당시 판결문을 몇 건 가져다 보면서 사법부가 암울했던 시절에 대해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과거 법원의 판결은 조봉암, 동백림, 인혁당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사법부는 그 동안 일부 사건에 대해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주로 특별법 등 강제적인 계기가 마련된 사안에 한정했다.
법원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안들은 거의 재심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는 법에 명시된 재심허용 기준이 워낙 엄격한데다 이마저도 재판부가 엄격하게 해석하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사법 살인’으로 일컬어지며 국제적인 오명을 남긴 인혁당 판결의 경우, 서울중앙지법에서 3년째 재심을 개시할지를 놓고 심리하고 있고 ‘신귀영 간첩 사건’ 역시 하급심에서 재심 결정을 했지만 대법원이 번번이 기각한 바 있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구체적인 과거사 해결방안으로 역시 재심을 꼽았다. 하지만 “개별 법관의 재판에 대한 사안이라 지금 뭐라 말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문제가 된 판결에 관련된 인물은 이미 모두 법원을 떠나 인적청산의 방법도 실효성이 없고 ▦조사위원회 같은 별도 기구를 통한 해결은 재판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과거 잘못된 판결에 대한 자체 조사 및 대 국민 사과 의지는 밝혔지만 이 역시 “신중히 검토해 판단하겠다”는 전제를 깔았다. 다만 과거사 반성에 대한 대법원장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한 만큼 향후 대법원이 관련 사건 재심에서 보다 전향적 판결을 할 여지는 있어 보인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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