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시절 국정원의 도청범죄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검찰이 찾아냈다. 검찰은 DJ정부 초대 국정원장 이종찬 씨와 언론계 인사의 대화를 도청한 녹음 테이프를 전직 국정원 직원 집에서 압수하는 한편,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 의원들이 폭로한 국정원 도청기록이 사실이라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DJ 정부의 도청사실을 공개한 뒤 정치권의 어지러운 정략적 논란에 휩쓸려 묻힌 듯 하던 진상이 결국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보기관이 저지른 음험한 정치사찰 목적의 도청범죄를 검찰이 밝혀낸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정보기관도 검찰 못지않게 국가에 봉사하지만, 그 사명감이 정치의 영향으로 왜곡될 때 이를 견제하는 역할은 국가 최고수사기관 검찰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당위를 실천한 것은 실로 획기적이다.
이렇게 볼 때, 검찰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주문하는 것은 오히려 핵심을 벗어난 것일 수 있다. 그보다는 정략적 고려가 앞선 탓에 도청 논란을 뒤죽박죽으로 만든 정치세력이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삼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집권세력이 이기적 목적으로 DJ 정부의 도청범죄를 비난하다가 반발에 부딪치자 제멋대로 면죄부를 준 행태를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도청범죄의 책임은 엄밀하게 가려야 한다. 전직 국정원장들이 하나같이 책임을 부인하는 상황은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정보기관은 본질적으로 정치사찰의 하수인일 뿐, 궁극적 책임은 집권자와 국가에 있다. 지금 정부가 지난 정권만 탓하거나 도청으로 드러난 야당의 비리를 추궁할 겨를이 없는 이유다. 따라서 여야를 가림 없이 과거를 반성하고 도청 근절을 위한 검찰의 독립적 수사를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론과 사회도 국가의 도청범죄와 정경유착비리의 중대성을 냉정하게 분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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