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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재벌에 휘둘리지 않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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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재벌에 휘둘리지 않는 정부

입력
2005.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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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을 작성한 경위에 대하여 청와대가 재경부 및 금감위 등 관련 부처를 조사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작년 11월 입법예고 당시 없던 부칙 4개 조항을 슬며시 끼워 넣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가 기존 금산법 규정을 초과하여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에버랜드 주식을 처분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 것은 누가 보아도 의혹이 가는 행동이었다.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국회에 정부안이 제출된 뒤이지만 늦게라도 청와대가 브레이크를 건 것은 잘한 일이다. 참여정부가 집권 후반기를 맞이하였지만 교활한 공무원에게 속지 않고 재벌 문제를 일관되게 해결해 나가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국민의 정부의 경우, 초기에는 재벌 개혁을 한 최초의 정부가 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후반기에 재벌의 금융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30%까지 인정하는 크나 큰 잘못을 저지른 바 있다. 이 문제는 참여정부 들어 원상회복을 시키지 못하고 의결권 허용 범위를 15%로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선에서 공정거래법을 고친 바 있다. 그러나 삼성은 의결권 제한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와 같이 참여정부 들어 공정위와 삼성이 2년 이상 의결권 문제로 다퉈온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재경부 등이 금산법에 무리한 부칙을 추가하여 삼성을 봐주려고 했다는 것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삼성을 봐주는 게 아니라는 정책적 판단이 확고하였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정책 판단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입법예고에는 왜 부칙 개정 내용을 뺐나? 전임 금감위 부위원장이 재임 중은 물론 물러난 뒤에도 금산법을 엄격히 적용할 것을 주장해 왔는데, 그러면 비공무원 출신인 이 사람이 틀렸단 말인가? 도대체 국무회의 전 차관회의는 누가 참석해서 어떤 심의를 했는가? 회의록은 있는가? 국무회의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이의를 제기했는가? 국무회의는 회의록이 있는가?

청와대에는 ‘e-지원(知園)’이란 기록시스템이 있다지만 유전 의혹도 빠져 나갔다. 이번 금산법 건은 재경부 독단으로 국무회의에 올린 것인가?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하지 않고 국무회의에 올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청와대의 누군가와 사전 조율을 했다면, 그 기록은 e-지원에 남아 있는가? 혹시 삼성의 로비에 영향을 받은 고위 공직자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혹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기를 바랄 뿐이다.

재벌 쪽에서는 계속 주장할 것이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피해야 하므로 정부안대로 국회가 통과시켜야 한다고.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총수의 세습 경영을 원활하게 하는 측면이 훨씬 강할 것이다. 경영권 세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공정거래법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금산법 개정에 로비를 한다면 그러한 삼성 측의 노력이 합법적인 수단을 취하는 한 법이나 행정력으로 제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법적 행위가 개재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삼성은 우리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법 위에 설 수는 없는 것이다. 뇌물 수수, 정치 자금 등과 관련하여 실정법을 어겼으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법치국가라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청와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정책 모니터링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재벌 권력을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깨끗한 정부에 있다. 집권 후반기에 부패 스캔들로 세월을 허송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공직자의 부패를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교활한 재벌은 대통령이나 고위직이 다른 얽히고설킨 일로 정신차리지 못할 때를 노릴 것이다.

일관되게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를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재벌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임을 믿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집권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잘하는 정권이 성공하는 정권이다.

김태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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