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발급 인터뷰를 위해 줄을 서 본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묘한 감정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불과 1~2분 정도의 인터뷰를 위해 신청을 하고 며칠을 기다린 후 적지 않은 수수료를 내고 아침 일찍 대사관 담장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 보면 이렇게까지 해서 미국을 가야만 하는가 하는 일종의 분노와 그럼에도 미국을 꼭 가야 할 필요 때문에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미국 입국사증을 얻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가끔은 약소국 국민의 비애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어렵사리 발급 받은 비자를 들고 미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대에서 지문을 찍고 얼굴 사진을 스캔하듯이 찍히고 나면 미국에 대한 감정이 어찌 될 것인지는 불문가지이다.
미국 대사관이나 미국 정부가 이러한 불만을 모를 리는 없겠지만,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말했듯이 미국에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고 하니 아쉬운 사람들이 불편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구체적 손익 따져봤나?
미국의 이러한 오만함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8%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규정하고 있는 교토의정서에 대한 비준 거부, 무역 분쟁시 의례적인 보복 위협, 이라크 전쟁과 동맹국들에 대한 협조 강요 등뿐만 아니라 이처럼 일상 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현 정권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주적 혹은 탈 미국적 외교 정책 시도는 이러한 감정적인 반미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국제정치의 차원이나 사소한 비자 발급 문제에 이르기까지 팽배해 있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국가 외교적 차원에서는 감정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4년 10월 논란 끝에 타결된 주한미군 기지 이전, 전 세계 미군 재배치 계획(GPR)과 주한미군 재배치,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능 변화, 북한 핵 문제 등 핵심적인 이슈 등에서 한ㆍ미 양국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전 정권들이 추구했던 어느 정도의 독자적인 대북 정책이 미국의 동의 내지는 지원 하에서 이루어졌던 것에 반하여 참여정부의 외교 정책은 국내적인 반대와 미국과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국제 정치 질서의 변화와 한국 경제의 대미 의존도 약화로 대표되는 국제 경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외교 정책의 추진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미 정책을 둘러 싼 국내외적인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자주적 외교 정책 수립의 국내적 합의와 대외적 설득이 결코 용이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혼선과 갈등의 근본적이 이유는 자주적 외교 정책이 국가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현 정부가 제대로 산정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현 정부는 정치ㆍ군사적 이익, 경제적 이익, 그리고 국내적인 자주외교에 대한 요구 등등 어떠한 형태의 ‘국가이익’을 현재 외교 정책의 전제로 삼고 있는지 밝힌 바가 없다.
나아가 상이한 형태의 국가 이익들이 미치는 정치ㆍ경제적 손익을 고려하고 있는지는 들어본 바가 없다. 과거와 같은 형태의 확고한 한미동맹은 현재의 국제 질서 하에서는 돌아갈 수 없는 향수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국가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감정적 정책은 결국엔 부담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반미적 정서에 부응하는 외교 정책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동북아 균형자론이나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해야겠다는 언설들이 일부 국민들에게는 시원하게 비쳐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벌어진 한ㆍ미 관계를 수습하고 복원하려는 정치ㆍ경제적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 몫으로 남게 되었다. 한나라당에서 지적하였듯이 향후 17조2,000억 원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6자 회담의 타결이 누구를 위한 국가이익이 될 것인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하용 경희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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