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에 이름 난 작가들이 드라마와 영화를 소설로 옮기는 작업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예술 장르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며 영향력을 미쳐온 본격 문학의 생산자들이 그간 문단에서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아온 ‘드라마 소설’과 ‘영화 소설’ 쓰기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9월부터 중국에서 방영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장금’의 이병훈 PD_김영현 작가 콤비가 다시 한번 뭉친 SBS 월화 사극 ‘서동요’. 방송 시작 1주일을 앞두고 소설 ‘빨치산의 딸’ ‘행복’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정지아(사진ㆍ왼쪽)씨가 김영현 작가의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쓴 ‘소설 서동요 1ㆍ2’(지식공작소)가 출간됐다.
드라마 작가가 소설을 쓰거나 신춘 문예 출신 작가가 드라마 작가로 전업하는 사례는 왕왕 있었지만 유명 소설가가 드라마를 토대로 소설 쓰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최초. 문단 내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한 정 작가는 ‘소설 서동요’에 본명 대신 정재인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지식공작소 관계자는 “‘서동요’를 관행대로 대필 작가에게 맡기기에는 아이디어와 스토리가 아깝다고 판단해 역량을 인정 받은 정지아 작가에게 작품을 맡기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창작과 비평사’ ‘문학동네’ 등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 문예 출판사로 꼽히는 문학과 지성사도 배용준이 주연을 맡아 일본에서 개봉 사흘 만에 40억 원의 수입을 올린 영화 ‘외출’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소설가 김형경씨가 쓴 ‘외출’을 출간했다. 문단의 인기 작가이자 중진인 김씨가 영화를 소설로 옮긴 책을 출간한 사건은 파격 그 자체였다.
말하자면 작가의 공인된 작품을 바탕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어온 기존의 ‘룰’이 역전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의 배후에는 작가의 소설책이라 해도 초판을 소화하기가 버거운 국내 순수문학 시장의 급격한 위축이 자리하고 있다. 작가들이 영상 콘텐츠와의 ‘이종교배’를 독자를 유인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의 하나로 선택하고 있는 것.
여기에 한류로 인해 국내는 물론 아시아 각국에서 드라마 소설과 영화 소설의 수요가 늘고 있는 요인도 한 몫 하고 있다. ‘대장금’의 경우 관련 소설과 만화 등 관련 서적이 국내에서만 100만부 이상 팔렸고 일본 출판사인 와니북스는 ‘외출’의 초판을 10만부 찍었다.
소설 ‘서동요’의 경우도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각국과 출판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영상물을 소재로 한 출판 시장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출판사들이 문단 작가들을 통해 고급화되고 차별화한 상품 생산에 나선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순수문학 작가들의 드라마소설, 영화소설 쓰기는 그간 하위 문화로 취급 받아온 이들 장르의 품질을 끌어올리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글쓰기의 가능성을 연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인 평가가 대체적이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학이 독창성과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힘을 영화와 드라마 등의 이미 공개된 영상 매체로부터 빌리고 있는 현상은 한국 문학의 쇠락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또 하나의 징후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문학이 대중 문화와 접점을 찾아가려는 시도를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세계화와 멀티미디어 시대 속에서 독자들의 변화욕구를 읽어 내지 못해 점차 외면돼 가고 있는 문학이 결국 주도권을 다른 장르에게 빼앗기고 있지않느냐는 점에서는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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