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인도적 식량지원을 거절한 뒤 북한 내 비정부기구(NGO) 주재원들을 철수시키고 있는 데 대해 국제사회의 당혹감이 커지고 있다. 북한이 식량지원 중단 요청을 공식화한 것은 22일이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최수헌 북한 외무성 부상은 코피 아난 사무총장에게 이 같은 뜻을 전달하면서 그 이유를 “올해 식량생산이 늘어난 데다 미국이 식량문제를 정치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올해 대풍을 맞았고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가 식량배분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감시활동을 벌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왔다는 점에서 북한의 의도를 짐작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유엔과 미국 등은 북한의 요청이 시기 상조라고 보고 있다. 얀 에겔란트 유엔 긴급구호조정관은 23일 “북한 당국의 원조 거부는 너무 이르고 너무 갑작스러운 조치”라면서 “북한 어린이들을 생각해서라도 결정을 철회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에겔란트 조정관에 따르면 북한의 2,250만 인구 가운데 아직도 7%가 기아상태에, 37%가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유엔은 북한을 설득, 학생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식량원조 프로그램을 ‘개발계획’으로 명분을 바꿔 계속 실행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북한측이 인프라 건설 등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개발 원조는 계속 받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WFP의 제럴드 버크 대변인도 아이들을 위한 긴급식량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23일“우리는 북한의 요청에 어떻게 대응하는 게 적절할 지에 관해 국제사회의 파트너들과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당장 북한의 진정한 의도를 알지 못해 당황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측은 이미 NGO 관계자들에게 철수통보를 하고 있다. 25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1997년부터 식량증대 사업을 벌여온 아일랜드 NGO ‘컨선(Concern)’의 아시아지역 책임자 앤 오마호니씨는 “우리는 수년전부터 북한의 영농환경 개선 등 개발지원에 중점을 뒀는데 12월말까지 직원을 철수시키라고 요청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1999년부터 북한에서 식량증산 등 사업을 펼치고 있는 프랑스 NGO 트라이앵글 제너레이션도 비슷한 경우다. 북한이 계속 받겠다고 한 개발지원도 철수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이런 우려 속에서도 북한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인도적 기구의 대북사업은 중단될 수 밖에 없다. WFP는 최신 구호보고서에서 11월말까지 북한 내 19개 영양식 가공공장의 활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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