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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유행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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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유행병

입력
2005.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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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병(epidemic)은 어떤 질병이 일시적으로 높은 비율로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발생 범위가 국경을 넘을 정도로 넓을 때는 범유행병(pandemic)이라고 부른다. 전염병과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하지만, 전염병 가운데 특히 증상이 전신적으로 나타나고 급성으로 진행되는 것을 일컫는다. 예전에 많이 쓰던 역병(疫病)과 동의어다.

법정 전염병 1군에 속하는 페스트 콜레라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세균성 이질 등 전염속도가 빠르고 국민건강에 미치는 위험이 아주 큰 질병을 주로 지칭한다.

■유행병은 이처럼 전염병에 공식용어 자리를 내준 대신, 시대풍조에 따라 일어나는 건전하지 못한 폐해를 비유할 때 더 자주 쓰인다. 요즘 우리 젊은 세대들은 혈액형 B형 남자들의 못 말리는 왕자병을 가장 악질적 유행병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고유한 의미의 유행병은 발생 즉시 국가와 사회가 방역대책을 서둘러야 하는데 비해, 신세대들이 말하는 유행병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나 그런 기질이 있는 보균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치료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셈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들에게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신세대도 아닌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우리 사회의 최신 유행병을 짚었다. 지난 추석 민심을 살핀 결과, 대통령과 여당을 비판하지 않으면 왕따 당하는 분위기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쓰나미가 밀려오듯이 거센 민심이반은 여권이 신뢰의 위기에 처한 때문이라는 진단도 덧붙였다.

언뜻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고, 뭔가 뚜렷한 방역대책을 제시할 듯한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그게 아니다. 국민이 대통령과 여권의 진정성을 인정하도록 노력하자는 얘기는 자신들은 멀쩡한데 국민이 위생을 돌보지 않아 역병이 창궐한다는 식의 불평으로 들린다.

■공연히 말꼬리를 잡고 시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전염병 방역대책에서 병의 원인 등을 정확하게 밝히는 역학조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듯이, 저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회적 유행병도 근본이 무엇인가를 옳게 헤아려야 한다.

대통령의 생각은 훌륭하신데도 국민이 이를 알지 못한다거나, 비판여론에 동조하는 여권인사는 비겁한 자라고 말하는 것은 역학조사 대상부터 혼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스스로 면역력을 과신한 채 국민을 억지로 환자로 몰다가 제 먼저 몸 져 눕는 일은 없기 바란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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