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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궁예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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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궁예도성

입력
2005.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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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취재를 가서 자금성을 처음 보았을 때 그 규모에 기가 질려 반사적으로 서울의 경복궁이 떠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경복궁은 그나마 일제의 조선총독부 건물에 가려져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논란 끝에 총독부 건물이 철거되고 원형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경복궁은 아름답다. 때로 한국일보사 건물 13층에서 바라다보는 경복궁은 비라도 긋고 지나간 날이면 그 말간 소박함 자체가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총독부 건물이 있던 빈 자리마저 푸근하다.

경복궁처럼 그렇게 복원되어야 할 우리 역사의 하나가 궁예도성(弓裔都城)이다.

궁예도성은 행정구역상으로 강원 철원군 홍원리 벌판에 있다. 이곳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땅, 비무장지대(DMZ) 안이다. 버림받은 신라 왕자 궁예는 당의 침략으로 멸망한 고구려 재건의 기치를 들고 905년 이 벌판에 도읍을 정한다. 올해는 궁예가 세운 태봉(泰封)국의 건국 1,100년이 되는 해다.

사학자들은 통일한국이 이루어진다면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휴전선 한 가운데 있는 궁예도성의 발굴이라고 말한다. 왜? 궁예도성은 한반도 분단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국내 고고학계 현장 발굴의 증인으로 불리는 조유전 선생은 그의 저서 ‘한국사 미스터리’에서 궁예도성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1917년 일제가 작성한 지도와 1951년 찍은 항공사진, 1991년 재작성한 지도를 토대로 보면, 군사분계선이 도성을 거의 정확히 반으로 나눠 반쪽은 북한, 반쪽은 남한 땅이다. 그것도 모자라 서울-원산 간 경원선 철로가 동서로 도성을 잘라놓았다. 도성은 동서로, 다시 남북으로 잘린 애처로운 형국이다…. 좁다란 수색로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언제 지뢰가 터질지 모른다.”

일제시대 자료에 따르면 궁예도성은 외성이 무려 12.5㎞, 내곽성이 7.7㎞에 달한다. 이 호화로운 도성 건설이 궁예 몰락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 규모가 한성백제의 풍납토성(전체 둘레 3.5㎞), 고구려 국내성(2.7㎞) 등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2001년 최초로 남방한계선 안으로 들어가 궁예도성을 조사했던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팀은 길이 400~500㎙, 높이 3~7㎙의 토성과 초석 등을 곳곳에서 확인했다.

철원군은 태봉국 철원 정도 1,100주년인 올해 들어 궁예도성 탐방을 추진했다. 통일부와 문화재청 등에 9~10월 궁예도성 탐방을 허용해줄 것을 거듭 요청했지만 아직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물론 궁예도성이 비무장지대에 있어 민감한 사안인데다 탐방 시기가 국정감사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철원군은 1999년 북한의 철원군과 교류를 시작할 당시부터 궁예도성에 대한 남북한 공동조사를 제의했으나 이 역시 진척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남북한 당국에 궁예도성의 조사와 발굴, 복원을 통일 후의 첫 사업이 아니라 통일을 위한 첫 사업으로 시작할 것을 제의하고 싶다. 핵 문제의 해결, 경제 협력, 금강산ㆍ개성 관광도 소중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남과 북이 핏줄에서부터 공유하고 있는 유산이고 또 더없이 값진 자산이다.

한반도 한복판 금단의 땅 철원에 남과 북이 함께 궁예도성을 되살려서 세계에 보란 듯이 내놓는 것이다. 역사의 복원은 단지 케케묵은 과거의 흙먼지를 털어내는 일이 아니라 신선한 미래를 위한 소중한 출발이다.

하종오 사회부 차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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