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군 제대하고 올 3월 복학한 K대 김모(25)씨는 지난 학기만 떠올리면 부화가 치민다. 그는 며칠 밤을 새며 기말시험을 치러 내심 장학금을 기대했다. 하지만 미리 써온 답안지를 시험 도중에 통째로 바꿔 제출한 후배 A씨가 장학금은 차지해 버렸다. 김씨는 “A씨가 부정한 방법으로 장학금을 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시험뿐 아니라 강의시간 이뤄지는 부정행위도 다반사다. 복학생 이모(26)씨는 후배들이 리포트 등 과제물을 직접 쓰지 않고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내용을 그대로 제출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씨는 “후배들은 ‘교수들도 모든 과제물을 다 불 수 없다’고 실토한다”며 “학교는 학생들의 부정행위에 대해 무신경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학당국이 커닝을 비롯해 날로 심각해지는 학생들의 학업부정행위 확산을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국대학생커닝추방운동본부는 23일 서울 프레스센터 환경재단 대회의실에서 ‘대학 내 학업 정직성 향상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덕성여대 심리학과 오영희 교수는 “교수와 대학이 학업부정행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내 부정행위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 교수는 또 “학습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커닝의 강압적 금지보다는 미국 유명대학이 대부분 실시하고 있는 ‘명예제도’(honor system)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예제도는 교수 학생 학교 3자가 참여하는 위원회가 학업부정행위의 종류와 처벌을 명시하고, 관련자들의 행동지침 등을 담은 ‘명예 규정’을 만들어 학교의 모든 주체가 자율적으로 지킬 것을 서명하는 프로그램이다.
오 교수는 “최근 학생들은 대리출석, 커닝페이퍼 사용, 과제물 무단인용, 예상답안을 책상에 베껴놓기 등 학업부정행위를 스스럼없이 저지른다”며 “학업부정행위는 대학 뿐 아니라 사회의 도덕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만큼 대학의 모든 주체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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