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리타의 상륙지점으로 유력시되는 미국 텍사스주의 갤버스턴은 100여년 전인 1900년 9월 8일 4등급 허리케인이 덮쳐 주민 8,000~1만 2,000명이 숨지고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는 비운의 역사를 갖고 있다. 사망자 수로 볼 때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 중 하나로 꼽힌다.
텍사스 남부해안의 모래섬 위에 건설된 인구 5만 8,000여명의 작은 섬 도시 갤버스턴은 당시 ‘텍사스의 보석’ ‘미 남서부의 월 스트리트’라고 불릴 정도로 번영을 누렸다. 텍사스주의 유일한 수출항이자 면화 수출의 중심지였으며 주 내에서는 유일하게 우체국 전화기 의과대학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허리케인의 후유증으로 경제기반이 무너지고 1914년 북서쪽으로 82km 떨어진 휴스턴에 멕시코만과 직접 연결되는 운하가 건설되면서 변방의 작은 도시로 영락하고 말았다.
1830년대부터 본격적인 이민이 시작돼 1839년 시(市)가 된 갤버스턴은 19세기 미국 남서부의 최대 관문으로 손꼽히며 남북전쟁 때는 남군의 주요 보급기지 역할을 했다. 전쟁 종결 직후인 1865년 6월 19일 북군의 고든 그레인저 장군이 진군해 텍사스주의 연방 복귀와 멕시코만 일대 노예들의 자유를 선언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허리케인 참사 이후 텍사스대 의대와 텍사스 해양아카데미, 머린 생명의학연구소 등 연구 교육기관들이 자리를 잡았고 1972년 컨테이너 터미널이 세워지면서 다시 항만도시로서의 기반을 구축해 왔다.
주민들은 허리케인 엄습 후 해발 2.4m에 불과한 갤버스턴 일대 해안선에 160만 달러를 들여 길이 4.8km, 높이 5m의 둑을 건설했다. MSNBC 방송은 “콘트리트 장벽이 이번 허리케인으로 평가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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