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기고/‘日역사왜곡 싸움’ 시작일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고/‘日역사왜곡 싸움’ 시작일뿐

입력
2005.09.22 00:00
0 0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이 편찬한 후소샤(扶桑社)판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한국사를 비롯한 아시아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위험한 역사관을 가지고 집필되었는가에 대한 비판이 지난 3월부터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8월까지 이어진 일본 지역교육위원회의 교과서 채택 과정은 이 역사교과서에 대한 일본 교육계와 시민들의 평가 과정이었다. 결과는 4,860권, 비율로 따지면 일본 중학생의 0.39%에 그쳤다. 새역모 역사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의 대승리였다.

일본 우익 정치권이 공공연히 새역모를 지원하는 가운데 벌인 채택 저지 운동은 매우 힘든 싸움이었다. 채택을 막기 위해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운동가들과 시민단체는 온 힘을 기울였고, 여기에 큰 힘을 보탠 것은 바로 한국의 양심이었다. 그러므로 이 승리는 한일 양국 시민들의 승리라고 하겠다.

정부와 국민들의 성원, 학계의 적절한 대응은 채택 저지운동을 성공으로 이끈 동력이었다. 정부는 대책반을 구성하고 음과 양으로 지원하였으며, 학계는 기동성 있게 왜곡 내용을 분석, 전파하였다.

국민들은 감정적인 반일행동을 자제하고 대신 합리적이고 온건하게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며 저지 운동에 동참하였다. 특히 마지막 단계에서 일본 신문에 의견 광고를 게재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벌인 결과 6억 9,000여만 원의 시민 기금이 모였다.

처음 모금운동을 시작할 때는 이런 거액이 모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두 번 정도 광고할 수 있는 금액이 걷히리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모금을 주도한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이 기금으로 일본의 유력 일간지에 ‘새역모 교과서를 채택해서는 안 된다’라는 의견 광고를 14번이나 실었다. 이 광고는 한국 시민들의 의지와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고, 일본인들의 공감을 얻어내 채택 저지에 크게 기여했다.

저지 운동은 우리에게도 여러 성과를 낳았다. 국내외적으로 시민네트워크가 강화된 것, 정부와 시민단체의 협력체제가 구축된 것은 큰 성과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의회, 시민과 학생들이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에 새역모 교과서를 채택하지 말도록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방문하여 채택 저지운동을 지원하는, 민-관-정 네트워크라 불린 협력체제도 갖추어졌다.

또한,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 역사 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 발간 같은 대안을 제시하였고, 한국의 시민운동이 일본과 중국의 시민운동을 견인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큰 성과는 일본의 역사 왜곡을 동아시아의 평화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일반화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질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이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교과서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당장 내년에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채택이 예정되어 있고, 새역모는 4년 후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번 싸움의 승리는 긴 전쟁에서 한 고비를 넘은 것에 불과하며, 아직 평화를 향해 갈 길은 멀기만 하다.

그러므로 올해의 성과를 바탕으로, 평화 교육의 측면에서 역사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모색을 해야 할 것이다. 한중일 시민단체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역사인식 공유를 위한 공동 연구와 공동교재 개발, 역사 교사 및 청소년 교류와 공동 웹사이트 구축, 국제 사회에 알리는 활동, 대중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 등은 추진할만한 방안들이다.

안병우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공동운영위원장ㆍ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