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접한 뉴스 가운데 마음을 아프게 했던 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 중 부모의 이혼으로 버려지는 어린 아이들이 한 해에 1,000여명이나 된다는 뉴스는 유독 슬펐다. 게다가 이혼율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이 시점에 버려지는 아이들은 점점 더 늘어날 전망이라는 말은 기가 막혔다.
소식을 전해준 아홉시 뉴스의 기자는 저 출산율보다 더 걱정 되는 것이 이렇게 버려지는 아이들로, 하루아침에 부(父)도 모(母)도 원치 않는 짐이 되어 사회로 나오게 되니 문제라고 했다.
남과 여가 만나서 평생의 정을 함께하기로 먹은 마음이 시간이 가면서 온갖 이유로 깨지고 사라지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명한 대사처럼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 물었다간 외계인취급을 받게 될 날이 곧 오는 건가. 지금 막 연애를 시작하는, 열애에 빠져 있는, 이미 오래 도록 함께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연인들에게 한 쌍의 ‘남과 여’를 소개할까 한다.
▲ 순두부를 좋아해요
남자와 여자는 학생 때 만났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여 년 전이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던 시대이기도 했지만, 특히 지나치게 알뜰하신 아버지를 둔 남자는 늘 돈이 없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멋진 경양식집에서 멋진 외식도 시켜주고 싶고, 작은 선물도 해 주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는 항상 ‘순두부’를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다. 순두부가 너무 맛있어서 하루 세끼를 다 먹어도 안 질린다고, 돈이 생겨도 진짜 맛있어서 순두부만 먹게 된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여자는 처음에 남자의 소탈한 식성이 좋았다. 깔끔하니 생겨가지고 순두부를 좋아하는 이 남자, 순두부집에 들면 땀을 뻘뻘 흘려가며 밥 한 공기를 뚝딱 먹는 이 남자라면 솔직 담백할 것 같았고 심지어 귀엽게 보일 때도 있었다.
그래도 여자는 멋쟁이였고, 신식 문화를 동경했다. 여자는 용돈이 생길 때면 남자를 위해 경양식을 ‘쐈다’. 멀건 크림 수프랑 따뜻한 모닝 빵에 마요네즈가 뿌려져 나오는 ‘사라다’와 돈까스 따위를 먹는 날에는 더 멋을 부리고 데이트에 나갔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남자는 고백했다.
사실 데이트마다 먹는 순두부가 어쩔 땐 고역이었노라고, 그래도 당시에는 유일하게 그가 ‘지를’ 수 있던 메뉴가 그 뿐이어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은 채 순두부를 함께 먹어주던 여자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 생맥주 한 잔만 더 마시자
남자와 여자는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여전히 살림은 빠듯했지만 알콩달콩 동갑내기들의 신혼은 꿈같이 흘러갔다. 결혼 한 다음 해에 첫 딸을 낳으니 여자는 무척 힘들어 했지만, 남자는 6시면 칼 퇴근 귀가하여 포대기를 둘러 아이를 업고 노래를 불러 주었다.
아직 미혼인 처제들이 데이트가 없는 주말에는 딸애를 봐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여자는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간 듯 분홍 립스틱에 판탈롱 바지로 맵시를 내어 남자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둘은 생맥주를 즐겼다. 생맥주 한 잔씩이면 적당히 기분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알맞게 배도 불렀다. 둘은 시끌벅적한 호프집에 늦도록 앉아 학생들처럼 웃고 떠들었다.
하루는 여분의 자금이 넉넉지 않았지만 처제들이 또 애를 봐준다며 들이닥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수중에 딱 맥주 2잔 값과 집까지 왕복 차비가 있을 뿐이었는데.
그냥 집에 있기도 멋쩍고 해서 일단 둘은 가볍게 한 잔씩만 마시고 오자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막상 한 잔씩 들이키고 나니 다음 잔을 또 마시고 싶어진, 소위 말해 ‘발동’이 걸린 거였다. 젊은 부부는 망설인 끝에 맥주 한 잔씩을 더 마시고 대신 집까지는 걸어 가기로 했다.
두잔 째 맥주를 마시며 시간은 잘도 흘러 그야말로 깜깜한 밤이 되었고, 집까지 막상 걸어 가려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금 카드도, 모바일 캐시도 없던 시대니 무일푼이 된 두 사람은 걷는 수밖에. 무서운 밤거리를 이겨 보려 끝없이 대화를 나누며 두 시간 만에 집에 왔던 그 밤을 그들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삼 십 여년이 지나 남과 여는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사위도 가진 멋진 부부가 되었다. 성실한 남자 덕에, 지혜로운 여자 덕에 둘의 인생은 세월을 따라 발전을 거듭했고 그 공을 서로에게 돌리는 ‘고마움’또한 세월 따라 커져 왔다.
남자는 이제 여자를 위해 세상의 온갖 맛 나는 요리들을 다 사줄 수 있게 되었고, 둘은 동네 맥주 집에서 한 잔씩 나눠 마시고 ‘운동 삼아’ 걸어올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 ‘남과 여’는 바로 나의 부모님이다. 만나자 마자 첫눈에 반한 아버지가 “You shall be my wife(당신은 반드시 나의 아내가 될 것 같소)"라는 명언을 남기며 시작된 일방적인 구애가 담백한 연애로, 정열적인 신혼으로 이어져 오늘까지 친구처럼 잘 사시는 부부가 되었다.
이번 주말이면 결혼 삼십 몇 주년을 맞는 두 분을 위해 나는 케이크나 구워 드려야지. 이 시대의 어느 선생(先生)도 가르쳐 주지 못하는 ‘남과 여’의 관계에 대해 너무나 좋은 본(本)을 보여주시는 최고의 연인을 위해!
▲ 축하디저트1; 체리케이크
스펀지 케이크(밀가루 120그램, 설탕 120그램, 달걀 4개, 버터 40그램, 소금 약간), 체리 주스 가루 1~2큰 술, 휘핑 크림 1컵, 사우어 크림 1큰 술, 체리 쨈 2큰 술, 다크 쵸코렛 30그램, 식용 꽃.
1. 밀가루는 체 치고, 달걀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고 오븐은 180도로 예열한다.
2. 1의 노른자에 60그램의 설탕을 넣고 거품기로 돌려 뽀얗게 만든다.
3. 1의 흰자를 거품기로 돌려 부풀리면서 나머지 60그램의 성탕을 세 번에 나눠 넣는다.
4. 2의 노른자, 3의 흰자 1/2 분량, 밀가루를 섞는다.
5. 4에 나머지 흰자와 녹여 둔 버터를 넣는다.
6. 유산지를 깐 케이크 틀에 5를 2/3까지 붓고 25~27분쯤 굽는다.
7. 6이 익으면 틀에서 빼내 열을 식히고 가로로 반 가른다.
8. 7의 자른 단면에 과일 주스와 럼주를 섞어서 촉촉이 바른다.
9. 8에 녹인 쵸콜렛과 체리 잼을 섞어 고루 바른다.
10. 횡으로 나뉘었던 케이크를 다시 하나로 포개고 휘핑 크림, 사우어 크림, 체리 가루를 섞어서 겉에 바른다.
▲ 축하 디저트2; 단호박 치즈 파이
파이 반죽(밀가루 100그램, 버터 50그램, 설탕 10그램, 소금 약간, 달걀 1/2개), 단 호박 1/2개, 크림 치즈 45그램, 찹쌀 피, 설탕 약간, 계피 가루 약간.
1. 버터는 상온에 두어 부드러운 상태를 만든다.
2. 1과 밀가루, 설탕, 소금을 고루 섞고 여기에 달걀을 풀어 넣는다.
3. 2를 잘 반죽한 다음 둥글게 모양을 잡아 유산지나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20분 둔다.
4. 3을 꺼내 얇게 밀고 다시 냉장고에 넣어 5분쯤 더 둔다.
5. 버터를 칠해 둔 미니 파이 틀에 4를 잘라 넣어 꼭 누르고 180도로 예열된 오븐에 15~20분 굽는다.
6. 단 호박은 푹 삶아서 으깨고 크림 치즈와 섞은 다음 설탕, 소금, 계피 가루로 간을 한다.
7. 5의 파이 껍질을 틀에서 빼고 식힌 다음 6을 속에 넣는다.
8. 찹쌀피를 기름에 튀겨 7위에 장식한다.
푸드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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