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병이 천년 고도(古都) 경주의 문화재 주변 소나무숲까지 침범, 유적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경북도는 최근 경주시 서악동 야산 1㏊에서 고사한 10여 그루의 소나무를 정밀분석 한 결과 재선충병에 감염된 것을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지역은 서악동에 있는 사적 제20호 태종 무열왕릉에서 400여㎙ 정도 떨어진 곳으로 경주 고분군의 아름드리 소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김유신장군 묘, 대릉원, 천마총, 경애왕릉 등 경주의 고분군과 문화재들은 이번 재선충 발병지로부터 반경 2~4㎞ 이내에 밀집해 있어 주변 소나무들이 감염권에 든 것이다. 재선충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는 2㎞까지 날아다닐 수 있다.
경북도는 재선충병 발병과 관련 11월말부터 감염된 소나무를 베어내 소각키로 했다. 또 인근 문화재 주변의 소나무숲에 대해서도 솔수염하늘소가 날기 시작하는 내년 5월부터 예방 차원의 항공방제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지역에서의 재선충병 감염 경로를 정확히 밝혀내지 못해 이미 때늦은 조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경북 경산시 진량읍 다문리의 경우 벌채한 소나무를 사용한 건설공사 등에 의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등 거리상으로 솔수염하늘소에 의해 전염됐다고 보기만은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번 경주시 서악동의 경우 인근에 특별한 건설공사가 없었던 점 등으로 미뤄 재선충 감염지역을 출입한 사람의 몸에 균이 묻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재선충은 1989년 부산에서 처음 발견된 후 2001년 경북 구미시 오태동, 2003년 칠곡군, 2004년 포항시와 경주시 양남면으로 확산된데 이어 올해 들어 청도, 안동, 영천 등 경북 전역 1,143㏊로 확산돼 소나무 4만4,000여 그루가 피해를 보았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윤근일 소장은 “경주시내 곳곳에 산재한 고분과 기타 문화재 주변에 몰려있는 100년 내외의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돼 말라 죽는다면 유적지 일대가 폐허로 변할 것”이라며 신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윤 소장은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남산은 이번 발생지에서 불과 3㎞ 정도 떨어져 있어 중앙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경주시 문화재 주변 수백년 된 소나무만 치료하려 해도 재선충 방제용 수간주사액이 한 그루에 수십만원이 드는 등 막대한 비용이 들어 현재로서는 속수무책”이라며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항공방제만이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현재 영남권에서 확인되고 있는 재선충병은 충청권과 수도권 소나무숲으로 이미 옮아 갔을 우려가 높다”고 경고하면서 “고사목이 발견되는 등 이상 징후가 생기면 경북도 시ㆍ군 산림부서(1588-3249)로 곧바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구=정광진 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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