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41)는 한때 한국영화의 흥행 4번 타자였다. 데뷔작 ‘닥터 봉’(1995)을 시작으로 ‘은행나무침대’(1996) ‘접속’(1997) ‘쉬리’(1998) ‘텔 미 썸딩’(1999)에서 홈런을 날렸고, ‘초록 물고기’(1997) ‘넘버3’(1997) ‘8월의 크리스마스’(1998)로 깔끔한 적시타를 뽑아냈다.
극장 주변 노점상이 그의 새 영화를 반길 정도로 타율 10할의 흥행 성적을 뽐내던 그는 그러나, ‘이중간첩’(2002)과 ‘주홍글씨’(2004) ‘그 때 그 사람들’(2005)에서 잇달아 범타로 물러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체면을 구겼다. 영화의 흥행은 배우 감독 시나리오 등 여러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지만,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하던 그였기에 팬들의 실망과 안타까움은 그만큼 컸다.
와신상담(臥薪嘗膽). 그는 29일 개봉하는 ‘미스터주부퀴즈왕’에 출연하며 ‘닥터 봉’ 이후 10년 만에 가족 코미디라는 새로운 방망이를 뽑아 들고 재기의 안타를 노린다.
“가슴 따스한 코미디라 너무 좋았습니다. ‘텔 미 썸딩’을 마친 뒤 밝은 이야기에 밝은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오랜 바람이 이제 이뤄진 셈이에요.”
“의도와는 달리” 어둡고 무거운 역할을 지속해 온 그는 이번 신작에서 명문대를 졸업한 6년차 전업주부 조진만으로 변신해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다.
그는 동네 아줌마들과 고스톱을 쳐 반찬 값을 보태거나, 떼인 곗돈을 만회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여장을 차려 입은 남자 ‘아줌마’ 역할을 어깨 힘을 뺀 스윙으로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보며 철이 들 때부터 주부의 애환을 알았다”는, “바깥 활동도 제대로 못하며 아이들 교육까지 담당해야 하는 요즘 엄마들의 고충을 잘 헤아리고 있다”는 그는 배역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만큼 편안한 웃음과 안정된 연기를 선사한다. ‘대박’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옛 명성을 되찾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한석규는 “항상 그렇듯이 흥행을 첫번째 기준으로 두고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흥행 성적이 안 좋다고 들으면 속이 쓰린 것이 사실”이고 “학교 졸업작품이 아닌 이상 흥행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좋은 결과에 대한 바람을 애써 감추지는 않는다.
한석규는 대부분의 작품을 신인 감독과 함께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신인 유선동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한창 촬영 중인 사극 ‘음란서생’도 시나리오 작가 김대우의 장편 데뷔작이다.
“배우로서 새로운 한국영화를 선도해보자는 욕심”에 신인감독을 선호했는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신인 감독에게 배우는 점이 더 많다”고 했다.
‘주홍글씨’로 2년 만에 복귀한 그의 요즘 행보는 지켜보는 사람도 숨이 가쁠 정도다. “배우로서의 두려움보다는 즐거움이 더 커가고 있다”는 그는 차차기작 ‘미열’ 출연이 벌써 정해졌을 정도로 연기에 대한 욕심을 부쩍 내고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이요? 너무 많아서 탈이에요.
그 중에서도 기회가 닿으면 지나간 한국영화 리메이크작에 출연하고 싶어요. 배창호 감독의 ‘꿈’(1990)과 임권택 감독의 ‘짝코’(1980) 속 주인공은 매력 넘치는, 정말 하고 싶은 역할입니다."
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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