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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26) 핵무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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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26) 핵무기 ②

입력
2005.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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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북한 핵무기 6자회담.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세계 역사상 이만한 면면의 나라들이 모여 이처럼 공을 들이며 협상을 한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 핵 문제는 지역문제를 넘어 세계문제로 발전할 중요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아직 누구도 앞으로 발생할 세계문제를 정면으로 감당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따라서 조절 가능한 수준일 때 정리하자는 것에 관련 국가들의 이해가 일치했다.

미국 한국 일본 등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북한의 선언을 4차 6자회담 시작 전에는 애써 무시했다. 9월 19일자 공동발표문에서야 북한이 핵무기도 포기한다고 표현됐을 뿐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회담의 초점이 핵무기의 사용이라는 문제로 바뀌기 때문이다. 미국의 미니 뉴크와 북한 핵무기가 회의 탁자에 같이 올려질 위험을 피했다.

대신 미국은 핵무기로나 재래식 무기로나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남한도 핵무기를 받아들이거나 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다시 확인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군사문제, 핵 문제를 분석하는 것은 그것이 미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를 좌우하는 패권국가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말대로 미국의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이 군사력이며 그 군사력의 행사가 전쟁이다.

“미국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예측할 수 없는 나라다.” 영국 블레어 수상의 외교 고문이었고 현재는 유럽연합 평의회 외교ㆍ정치ㆍ군사문제위원회 사무총장인 로버트 쿠퍼가 미국을 정확하게 짚은 말이다. 기대와 달리 늘 합리적 이성적 판단만 하는 나라가 아니다.

현실 세계로 나온 미니 뉴크 군사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미국에게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비대칭 무기도 등장했다. 미국이 누리던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 효과가 엷어지는 상황이 나타났다.

어느 전장에서든 미국의 승리를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전력이 필요했다. 다른 나라들이 펼치는 비대칭 전략을 제압할 수 있는 미니 뉴크(Mini-Nukeㆍ지하관통 꼬마핵)가 등장하는 사정이다. 미니 뉴크가 중요한 이유는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라는 점이다.

미 하원 국가안보 소위원회가 2003년 2월에 보고서를 냈다. 미국 대통령은 어떤 목표물도 공격할 수 있는 수단,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샌디아국립연구소의 폴 로빈슨 소장은 미니 뉴크 생산은 핵실험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만으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포괄적핵실험금지협정을 피해간다.

올해 8월 초순, 미국 네브라스카주에 있는 전략사령부에서 회의가 열렸다. 미니 뉴크 개발을 포함하여 핵전력을 기획하는 회의였다.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는 1단계, 2단계 탄두로 돼있다. 대부분의 1단계 탄두는 10kt(TNT 1만톤 위력) 이내의 위력이다. 이 1단계 탄두만 사용하고 2단계 탄두 부분에는 비활성 더미(Dummy)를 쓴다는 계획이다. 이제 땅 속 깊이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운동에너지를 부여하면 된다. 실험할 필요도 없이 정말로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은 미니 뉴크의 심각한 위험성은 외면한다. 사용 가능한 핵무기라는 것만 강조한다. 미니 뉴크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니 뉴크, 그 꼬마 핵무기는 과학자들의 머리 속 상상의 세계에서 나와 현실 세계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오고 있다. 그 첫 표적이 한반도가 될 뻔했다. 영변 핵 시설로부터 시작되는 재앙은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대량살상무기, 재앙을 부르는 손짓 국제 사회의 요구는 핵무기를 감축하고 핵무기로 비핵국가들을 위협하거나 공격할 수 없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핵무기를 가진 나라 클럽’으로 불리는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의 불합리성을 많은 나라가 지적한다. 그러나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어느 나라든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여 미국 본토나, 해외주둔 미군, 미국의 우방국과 동맹국을 공격하는 경우에는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대응하겠다고 한 걸음 더 나갔다.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던 나라들, 즉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북한 등 소위 불량국가들이 꼭 대량살상무기와 연관되어 비난받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대량살상무기는 미국에 대한 위협이고, 위협의 현실화를 예방하기 위해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선제공격도 불사한다는 미국의 안보 논리가 적용될 수 있는 대상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의 직접적인 핵 위협 아래 놓여 있는 셈이다. 미국이 예방전쟁(Preventive War)을 일으키며 상대방의 임박한 공격에 대응한다는 의미의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으로 부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1981~1997)으로 90년대에 북한 핵사찰을 하고,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조사하는 유엔사찰단?단장이었던 스웨덴 출신 외교관 한스 블릭스(Hans Blix)의 저서 ‘이라크 무장해제’는 국제 권력정치의 어두운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잘 알려진 대로 유엔사찰단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증거가 없다는 것이 존재 자체가 없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라크 어디에서도 대량살상무기는 찾을 수 없었다.

미국이 이미 미니 뉴크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리고 이라크에서 틀림없이 사용했을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로브 넬슨 박사가 ABC TV에 출연하여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지하 벙커를 파괴하기 위해 미니 뉴크를 투하했더라면 약 1만명에서 5만명의 시민이 방사능 낙진으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한반도 통일과 핵 무장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통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 것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북한에 진주한 당사국들은 북한의 모든 핵 관련 시설을 신속히 접수하고 핵무기와 관련된 모든 물질을 확실하게 장악한 후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완벽하게 폐기해야 한다. 1997년에 필자가 입수한 육군지휘참모대학 발표 논문의 내용이다

북한이 붕괴할 때 한국 단독으로 북한을 안정시키고 질서 있게 북한군의 무장을 해제하거나 재편할 능력이 있는가? 필연적으로 미국이 개입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아마도 이번 6자회담에 참가한 다섯 나라가 유엔의 깃발 아래 연합하여 개입할 것이다.

그런데, 6자회담을 통해 본 중국은 커다란 의문을 남긴다. 90년대 내내 미국 혼자 북한과 핵 문제로 씨름하고 있을 때 중국은 왜 바라만 보고 있었는가?

미국의 선제 공격보다 더 무서운 무기를 중국은 가지고 있었다. 식량과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고 국제 사회에서 후견 역할을 철회했다면 북한은 훨씬 더 뼈아픈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중국은 무엇을 기다렸고 어떤 계산을 했고 왜 적극적으로 태도를 바꿨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끝이 없다. 그 실타래는 하나씩 풀어갈 일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통일한국의 등장은 북한의 핵 무장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주변국 모두 이제는 한반도의 핵무장에 관한 한 입을 맞추고 발을 맞춘다.

영변을 포함한 여러 곳의 핵 시설과 핵무기들은 어차피 우리 눈앞에서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다. 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면 통일한국 건설도 불가능하다. 통일 이후를 내다보며 다양한 전략을 단계적으로 지혜롭게 선택해야 한다.

북한 핵무기는 우리가 또 다른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현실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우리는 북한과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없다. 핵 무장한 북한에 대해서는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카드가 효력을 잃기 때문이다.

북한의 장래가 불확실하다는 점도 문제다. 통제 불능의 강경 군부그룹이나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그룹의 손에 핵무기가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아무래도 현재의 북한 지도부에 의해 핵 문제가 정리돼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다행히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 문제는 평화적 해결의 길로 방향을 잡았다. 실질적 이행의 단계에 들어설 때 ‘검증 가능한 한반도의 비핵화’가 북한 내부의 상황에 따라 넘기 쉽지 않은 산으로 등장할까 염려된다.

미국이 내부적으로 몇 년 전부터 깊이 논의한 ‘검증 가능한 폐기’의 절차와 내용에는 독립 주권 국가라면 굴욕감을 느낄 내용이 많이 있다. 기(氣) 싸움으로 보이는 경수로 문제보다 이것이 훨씬 더 심각하다.

그러나 우선 미국의 예방 전쟁 시나리오 한복판에 있던 한반도는 서서히 1차 과녁에서 벗어나고 있다. 북한이 핵 무기라는 외줄 매달리기에서 눈을 돌린 것은 대단히 잘한 일이다. 북한이 이 길을 알고 걸어온 것인가? 앞으로 북한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은 여러 갈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50년 넘도록 노래 불러온 우리는 과연 통일의 선행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는가? 세계가 주목하는 무대에 우리도 같이 올라섰다.

윤석철객원 기자 ys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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