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이후 경제당국자들이 잔뜩 고무됐다. 연휴 마지막 날 북핵 6자회담 타결은 이들에게 단비 같은 희소식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Fitch)가 당장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올리려는 움직임이라고 한다.
추석 내수경기도 지난해보다는 괜찮았다. 공식 집계는 아직 안 나왔지만, 추석선물세트 매출이 작년보다 10~15% 늘었다고 백화점과 대형할인점 관계자들이 입을 모은다.
당국자들의 얼굴이 펴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 추석이전부터다. 산업활동동향 등 몇몇 경제지표들이 호전되는 기미가 나타났던 것이다. 수출도 고유가 쇼크에 비해서는 꽤나 선전을 하고 있고.
오르는 주가는 낙관적 당국자들에게 특히 강력한 ‘알리바이’다. “주가는 경제의 바로미터. 경기전망이 안 좋다면 어떻게 주가가 오르겠느냐.” 주식시장이 사상최고점을 뚫고 왕성한 기운을 과시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부동산 때려잡기 대책과 때맞춰 증시가 달아오르니 그 절묘한 타이밍에 탄성을 내지를 만 하다.
당국자들은 더 나아가 오랜만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4분기에 가면 잠재성장률 수준의 경제회복이 가능할 것, 내년 초에는 경제회복을 실감할 수 있을 것….
지표가 좋아지는 것은 비교기준이 되는 지난해 수치가 워낙 안 좋았던 까닭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속사정들을 까뒤집어 보더라도 상반기에 비해서는 하반기 경제가 나아지는 징후들이 강하다.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은 흠잡을 일이 아니다. 주가를 포함해 각종 지표 호전이 쌓이다 보면 거시경제는 좋아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냉소적이다. “경제지표가 좋아진다고? 우리의 삶은 달라진 게 없는데, 무슨 덕을 볼 게 있나.”
사실 대부분의 국민에게 거시지표는 그저 아라비아 숫자일 뿐 그 이상의 실질적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일부 대기업과 전문업체 등 최소한 국내에서라도 1,2등을 하는 특정분야 종사자만 그 수혜를 보는 괴상한 경제구조가 되어 버린 탓이다.
S그룹을 보자. 작년과 올해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 감원을 하고 대학 나와 일자리 얻기가 더욱 어려워졌지만 여기는 ‘불야성’이다. 지난 1년간 직원이 15% 늘었고 올 상반기 직원 평균 임금이 17% 올랐다. 이것은 우리 경제지표와 민생의 괴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양극화 차별화가 모든 분야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최저빈곤층은 그나마 이 정부의 복지정책 강화에 기대하는 바가 있고, 상류층은 아무리 정부가 쥐어짜도 삶의 풍요까지 깨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중간지대의 중산 서민층이다.
집 차 한 대 굴리는 휘발유 값이 엄청나게 올라갔고 연초에 손꼽아 기다리는 소득공제환급액도 내년부터 확 깎인다. 이번 추석선물세트 판매량이 늘었지만 평균 구매단가가 크게 내려간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명절에 고향 부모님과 친지에게 보내는 선물 값까지 줄이고 줄여야 간신히 살아갈 수 있는 고단함 삶의 거울인 것이다. 앞으로 금리까지 인상되면?
아랫목이 뜨거워지면 자연히 윗목도 따스해질 것이라고 정부는 말하지만 지표가 일제히 수직으로 장기 상승하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누구를 위한 지표호전, 주가상승, 수출 호조인가.
정부는 성장잠재력 확충, 경제선진화를 외쳐댄다. 그러는 사이 민생은 미라처럼 말라간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현재를 잘 다지고 관리하면서 해나가야 한다. 거시지표 회복이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으로 이어지는 정책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지금의 과제다.
송태권 경제부장 songt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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