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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의 미디어비평] 언론에 대한 환상과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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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의 미디어비평] 언론에 대한 환상과 집착

입력
2005.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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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의 실언을 자꾸 상기시켜 발언자를 괴롭히는 것 같아 안됐지만, “대통령은 21세기인데 국민은 독재시대를 살고 있다”는 요지의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의 발언은 다시 음미해 볼만하다. 우선 이 발언은 분명히 말의 실수, 즉 실언에 해당된다. 하지만 보도된 과정과 결과를 보면 발언자에 대한 일부 신문의 공격적 태도와 해석상의 왜곡이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문제의 발언의 출처는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홍보수석이 대답한 내용이다. “현재의 부정적 상황이 언론 때문에 초래됐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느냐”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조 수석은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있고 국민들은 아직도 독재시대의 지도자와 독재시대의 문화에 빠져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자꾸 장기적 혁신을 하려는데 국민들하고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질문과 답변의 정황을 감안하면, 조 수석이 지칭한 국민은 사실상 일부 언론, 특히 보수적인 신문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 수석은 나중에 특히 일부 신문들이 보수 야당의 폭로 정치, 음모 정치 행태를 사실규명 없이 여과 없이 보도함으로써 독재시대의 정치 문화를 되풀이하고 있음을 비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홍보수석은 일부 보수 언론을 비판한 셈인데, 발언이 보도되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에 의해 국민을 모독하는 실언으로 왜곡되면서 빗발치는 원성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청와대 홍보수석이 일부 언론을 국민과 동일시할 정도로 언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인식상의 오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가 뒤틀어지고 꼬이는 것은 서로의 권력과 영향력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되기 십상이다. 대통령과 언론은 국민이 보는 앞에서 서로 공격을 함으로써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두려움을 가지고 경계하기 마련이다. 이때 서로의 감시 능력과 공격능력을 정확히 인식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게임의 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상생의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언론이 엉켜서 싸우기 시작하면 서로가 겉으로는 업신여기는 척하지만 내심 상대방의 잠재적 공격력에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두려움과 걱정은 상대방의 영향력을 과장되게 해석하게 만들고, 언젠가 한번 크게 손봐주고 싶은 심리가 발동하게 된다.

언론의 영향력은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심리적인 측면이 강하다. 대통령이 신문과 방송뉴스를 많이 볼수록 언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언론을 과대평가한 대통령은 다시 언론에 대한 탄압정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통례이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가 결국 언론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 대통령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이 지나치게 뉴스를 많이 본다면 참모들이 말려야 한다. 뉴스, 특히 대통령을 공격하는 뉴스를 많이 보게 되면, 대통령은 국민들이 이처럼 오류투성이의 뉴스에 영향을 받을까 염려를 하게 되고, 영향력이 비대해진 언론을 통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괜찮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만드는, 이른바 제3자 효과로부터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

기실은, 대부분의 신문, 심지어 방송언론까지도 국민들이 점점 떠나감으로써 언론의 영향력이 형편없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언론의 현주소이다. 일부 언론의 노골적인 정파성과 왜곡 편파 보도를 두둔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마저도 영향력 감퇴에 따른 생존을 위한 언론의 최후의 몸부림일 수 있다.

자신을 공격하는 일부 언론을 국민과 동일하게 볼 정도로 청와대 사람들이 언론의 영향력에 대한 환상과 집착에 빠지게 되면, 대통령뿐만 아니라, 언론, 국민 모두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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