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보드게임 가운데 ‘부루마블’이라는 것이 있다. 게임의 내용은 간단하다. 주사위를 굴려 사각형의 판 주변에 배열된 각국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땅을 사고 빌딩을 지어, 다음에 통과하는 사람에게 땅값을 받아내는 놀이다.
미국에서 유행한 모노폴리(monopolyㆍ독점) 게임을 모방한 것이지만, 게임의 파괴력은 상당했다. 얼핏 듣기에도 멋진 개념이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부를 축적하는 대표적 방법인 부동산 투기를 투영한 근사한 놀이, 이름도 그야말로 적합한 ‘(부동산) 독점’이니 어른이나 아이나 강한 매력을 느낄만한 놀이였다.
놀이판의 도시 중에는 감옥이라는 것이 있었다. 사각형의 한쪽 모서리였는데 운이 나빠 감옥에 걸리면, 다른 경쟁자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투자를 하는 동안 울분을 삼키며 지켜봐야만 했다.
기분이었는지 사실이었는지, 그 게임을 하다보면 유난히 감옥으로 가는 확률이 높아 억울해 하곤 했었다. 반면 가장 땅값이 비싼 곳으로는 좀처럼 주사위가 굴러주지 않았다.
한낱 놀이지만 부동산 투기에는 높은 확률의 수감(收監) 위험이 있다는 점은 괄목할만 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모두 공평하게 주사위를 던지고 주사위에 부정이 없다면, 특정한 도시로 말이 들어갈 확률이 높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 법 하다. 과연 부루마블은 모든 도시에 대해 공평한 확률이 주어지는 게임일까.
부루마블 놀이는 ‘마르코프 연쇄’(Marcov chain)라는 확률 법칙을 따른다. 방금 일어난 사건이 다음 일어날 사건의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현재 자신의 말이 어느 도시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다음에는 어느 도시로 가게 될지 확률이 정해진다. 현재 자신의 말이 서울에 있다면 주사위 2개를 던져서 13칸 이상 떨어진 도시 뉴욕으로 건너뛸 확률은 0이다.
또 다른 확률 게임인 포커나 고스톱 등은 전혀 다른 확률의 법칙을 따른다. 남아있는 패에서 순번이 돌아갈 때마다 새 패가 빠지게 되므로 다음 패의 확률은 지금 당장의 패가 아닌 게임 시작부터 모든 패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이 마르코프 연쇄의 또 한가지 영향은, 주사위를 던지는 횟수가 많아지면 각 도시가 나올 확률에 일정한 패턴이 생긴다는 것이다. 일기예보에서도 마르코프 연쇄와 몬테카를로 방법을 이용해 날씨를 예측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컴퓨터의 힘을 빌어 확률로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를 재현해보는 것을 몬테카를로식 재현 방법이라고 한다. 복잡한 수식을 인간의 머리로 푸는 대신 컴퓨터로 가능한 경우의 수를 모두 재현해 역으로 확률을 계산해보는 것이다.
마르코프의 연쇄와 몬테카를로 기법을 이용해 모노폴리 게임에서 각 도시에 말이 들어갈 확률을 계산해보면, 놀랍게도 감옥으로 들어갈 확률이 9.5% 정도로 다른 도시에 도달할 확률 2.5~3%보다 월등히 높다. 어린 시절의 억울했던 느낌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또 한가지 매우 비과학적인 개념에 마르코프 연쇄를 빗대어 말한다면, 악운과 행운은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오늘 악운이 벌어질 경우 내일 악운이 벌어질 확률이 5할 이상이라면 (그리고 실생활에서 경험한 바, 동일한 사건은 연속해서 발생할 확률이 높다. 재수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지 않는가) 내일도 모레도 악운은 계속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현재의 부동산 가격을 지켜보면 바로 그런 느낌이 든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1년 365일 비만 오지 않는 것처럼, 하루 하루가 아니라 1년, 10년을 본다면 언젠가 악운은 깨진다. 언젠가는 부동산 투기게임을 하면 감옥으로 골인할 확률이 거의 10%가 되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어느 기발한 상식을 담은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오늘의 불운을 슬퍼하지 말아라, 내일은 더 큰 불운이 닥치거나 오늘의 불운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덧붙인다. ‘언젠가는 확률이 바뀐다.'
연세대 토목공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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