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축구연구소가 눈에 띄는 자료를 발표했다. 학교와 실업ㆍ프로팀의 축구감독 400명에게 물어본 설문조사였는데 결과가 의외였다.
이 조사에 따르면 축구지도자 10명중 9명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오르기 힘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8강 이상 진출할 것으로 기대한 지도자는 1명도 없었다. 3전 전패를 당할 것이라는 응답자가 72명(19.4%)으로 16강 진출을 예상한 수의 두 배였다.
축구팬의 입장에선 시쳇말로 김새는 소리다. 비록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이 2002년 한ㆍ일월드컵이후 민망할 정도로 하강곡선을 그리곤 있지만 팬들은 여전히 2002년의 영광이 재현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4강은 어렵더라도 16강엔 오르려니 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다.
축구연구소의 조사는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됐던 9월초에 진행된 탓에 비관론이 강하게 반영됐을 법하다. 그러나 흥분과 과장이 섞여 있다 하더라도 이 조사엔 새겨야 할 대목이 있다.
경기력을 좌우하는 3대 요소로 선수들의 기량과 사령탑의 능력, 협회와 국민의 지원을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선수가 핵심이다. 멕시코 코스타리카 미국 나이지리아 등 맡는 팀마다 월드컵 16강에 올렸다는 유고 출신의 명장 보라 밀루티노비치 감독의 마술도 선수들의 기량이 세계 수준에 턱 없이 부족한 중국에선 통하지 않았다.
한국 대표팀은 그동안 5번 월드컵에 무대에 서면서 장기합숙훈련이란 비록 구시대적이지만 경쟁국이 탐을 내면서도 좀처럼 따라 할 수 없었던 아주 강력한 훈련방법을 사용해왔다. 대표선수들을 학교축구팀처럼 오랜 시간 모아 족집게 과외 하듯이 훈련시킬 수 있는 만큼 더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도 이 방식의 수혜자였다. 체력과 스피드를 활용한 강력한 압박축구와 뛰어난 용병술 및 전술전략도 1년 이상 파워프로그램을 가동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전가의 보도는 더 이상 휘두를 수 없다.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국내에서 뛰는 선수를 소집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어렵다. 박지성 이영표 안정환 차두리 설기현 등 대표급 선수들이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어 장기훈련은 물 건너갔다.
개최국이었던 2002년처럼 협회의 무한 지원과 K리그의 희생도 기대할 수 없다. 내년 6월 월드컵까지 9개월 가까이 남았지만 전체 대표팀이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한달이고, 국내파를 중심으로 소집할 수 있는 기간도 3개월을 넘기 힘들다.
다음달 1일부터 네덜란드 축구국가대표를 두 차례 이끈 딕 아드보카트호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다. 시작은 상큼하지 않다. 부임한지 두 달밖에 안된 아랍에미리트연합을 박차고 나온 모습이나 감독이 핌 베어벡 코치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이유로 마치 끼워주기 상품처럼 간택된 모습은 별로다. 2004년 유럽축구선수권에서 여러 차례 범했던 패착도 그에겐 부담이다.
하지만 기자는 아드보카트 감독은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히딩크에 버금가는 이름난 감독인데다 스타일도 비슷해 사령탑 교체에 따른 충격을 줄일 수 있고 선수들을 휘어잡을 수 있다. 여기에 한국선수를 잘 알고 있는 베어벡 코치와 이란계 미국인 압신 고트비 비디오 분석관이 보좌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아드보카트 감독 역시 훈련시간 부족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본프레레나 코엘류 감독이 그러했듯 ‘시간이 부족했다’는 해명은 더 이상 썩 좋은 변명이 되지 못한다. 달라진 여건에서 최상의 조합을 짜내는 지혜에서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아트보카트호의 비상은 2002년의 영광을 창조적으로 해석하는 데서 시작되야 할 것이다.
김경철 체육부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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