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나던 날, 강릉에서 서울로 오기에 앞서 시골집에서 명절 기간 동안 나온 쓰레기를 태웠다. 대부분 종이류의 박스들이었는데, 그걸 하나하나 태우며 낙엽을 태울 때와는 또 다른 옛 생각 하나에 잡혔다.
우리 어릴 땐, 아니 그보다 더 자라 스물 몇 살 젊은 시절에도 저렇게 좋은 박스들이 없었다. 지금은 이사를 할 때 이사 전문업체에서 나와 견적을 뽑고, 짐을 포장하고, 이삿짐을 옮겨 짐정리까지 대충 끝내주고 가지만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이사를 하며 가장 많이 필요한 게 바로 박스와 끈이었다. 그래서 이사를 할 때면 동네 가게에 빈 박스를 따로 주문하기도 했다.
명절 쓰레기를 태우다 보니 어떤 포장들은 그냥 태우기가 너무 아까워 보이는 것들도 많다. 물건값이 비쌀수록 포장에 들이는 비용도 만만찮아 보인다. 예전 같으면 곧 시집갈 색시거나 시집간 각시방의 반짇고리보다 더 예뻐 보이는 상자들도 많다.
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 할머니는 라면 낱개의 비닐포장까지 아깝다고 하나하나 모아두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다음 나는 동화속의 보물함 같은 상자를 태운다. 그 연기 속에도 인생은 지나가고 시간은 흘러간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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