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어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이 경수로를 제공하는 즉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안전협정을 체결ㆍ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경수로 제공을 NPT복귀와 IAEA 안전협정 체결 및 이행의 전제로 삼겠다는 것으로 하루 전의 4차 6자회담 합의내용과는 크게 배치된다. 북한은 공동성명 1항에서 모든 핵 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포기와 함께 ‘조속한 시일 내’에 NPT 복귀를 분명하게 약속했다. 그럼에도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딴 소리를 하고 나선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공동성명에 대북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하기로 한 시기가 모호하게 돼 있다는 점이 북한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이를 활용해 11월로 예정된 5차 회담을 겨냥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주장을 편 것이라고 해석된다. 하지만 공동성명의 내용이나 6자회담 참가국들의 입장을 감안할 때 북한의 주장은 6자회담의 틀을 위협하는 무리수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북한이 이처럼 무리한 주장을 펴는 것은 자신들의 이미지만 악화시킬 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본 난에서 북한이 지리한 밀고당기기로 관련국들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고 대범한 양보와 약속을 지키는 모습으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현명한 전략이라는 점을 거듭 지적해 왔다. ‘행동 대 행동’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5차 회담을 앞두고도 북한에게 필요한 것은 북한의 진의를 의심케 하는 억지 주장이 아니라 바로 이 같은 신뢰형성 조치다.
물론 북한이 병적일 정도로 경수로에 집착하는 것도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탓이라고 본다. 즉 경수로와 같은 카드가 있어야 미국의 약속 이행을 담보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인 것이다.
결국 경수로 논란의 핵심은 상호 신뢰 문제로 귀착한다. 향후 협상 과정에서 북미 간의 신뢰가 향상되지 않는다면 모처럼 합의에 이른 공동성명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점을 유의해서 이번 합의의 성과를 자찬하기에 앞서 관련국들 간 신뢰 수준을 높여가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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