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경수로 주장 속뜻은
다른 나라들이 받아 들일 수 없는 경수로 우선 공급 문제를 제기한 북한 주장의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4차 6자회담 기간 동안 자신들이 요구하는 경수로의 실체를 한 단계씩 구체화해왔다. 8월 1단계 4차 6자회담 때만 해도 북한이 주장하는 경수로 이야기는 평화적 핵 이용권의 하위 개념으로 미래에 경수로를 지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산물로 건설하다 중단된 신포 경수로 등 실체를 말하는 것인지 불분명했다. 그러나 9월 2단계 회담에 돌입하자 권리가 아닌 실체로서의 경수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정부 당국자는 “아직도 북한이 원하는 경수로가 신포 경수로인지, 다른 경수로인지 명확치는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이 20일 발표한 외무성 담화는 그 동안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한 단계씩 높여감으로써 이득을 본 전략을 답습하는, 몸값 높이기로 보인다. 11월로 예정된 5차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 이행과제의 선후관계를 결정하고, 구체적인 보상책을 논의하기 앞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줄줄이 늘어놓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자신들의 주장대로 경수로가 공급돼야 NPT에 복귀할 것이라고 끝까지 주장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최대치의 주장을 내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외무성 담화에 나온 ‘경수로를 제공하는 즉시’라는 표현이 경수로가 완공된 이후를 말하는지, 아니면 경수로 제공 약속이 이뤄진 이후를 말하는지 분명치 않은 점도 눈 여겨 볼 만 하다. 모호한 주장으로 언제든지 물러설 공간을 마련해두는 북한 특유의 외교전략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경수로와 대북 중대제안 관계는
정부는 7월 대북 200만㎾ 전력 직접송전을 내용으로 하는 중대제안을 발표한 이후 “중대제안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건설 중이던 북한 내 신포 경수로를 대체하는 것”이라고 밝혀왔다. 전력공급이 결정되는 순간 신포 경수로의 존재는 사라지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6자회담 합의문이 나온 이후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 뉘앙스가 달라지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0일 “제네바 합의에 의한 경수로는 일단 종료되지만 그 다음에 나타나는 문제는 협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제네바 합의에 의해 한국 미국 일본 EU 등이 KEDO 이사회를 구성, 건설을 추진하다 중단됐던 신포 경수로는 10월 말로 예정된 KEDO 이사회가 해체를 결정하고, 청산절차를 밟게 된다면 사라질 운명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 내부의 기류라면 다시 6자회담국의 합의에 의해 신포 경수로 재개 문제가 논의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신포 경수로가 살아나 북한에 다시 공급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 내에서는 신포 경수로가 현재 일시중단(suspension)된 상태이지 완전 폐기된 상태는 아니라는 논리도 제기된다. 이 말은 언젠가는 신포 경수로 공사를 재개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른 당국자는 “경수로 논의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논의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가능성을 닫아둘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경수로가 건설될 경우 전력공급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해가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날 “만약 경수로 공급 논의가 시작돼 경수로가 건설된다면 전력공급은 중단되는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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