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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정순택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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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정순택의 눈물

입력
2005.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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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지났다. 그러나 올 추석은 결실의 계절이 가져다준 풍요함에 대한 기쁨보다는 최근의 사회적 양극화와 관련해, 지난 1년간의 땀 흘린 결실의 불평등함 때문에 우울함이 앞선다. 특히 추석 차례를 지내면서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며칠 전 신문에서 본 정순택씨의 눈물이었다.

올해 84세의 정순택씨를 개인적으로 만난 것은 1990년 후반 한 진보적 이론지의 모임에서였다. 소련, 동구의 몰락 이후 지나치게 보수화된 한국학계의 흐름에서 진보학계가 체계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진보적인 이론지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가 이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고 뜻을 같이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너무 맑은 얼굴 때문에 나이에 비해 나이가 덜 먹어 보이는 그는 자신이 30년 이상 감옥에서 살다가 1989년 출옥한 장기수 사상범이었다고 소개했다.

충북 진천이 고향인 정씨는 대학 졸업 후 공무원으로 일하다 자신의 사상에 따라 1949년 월북했고 1958년 남으로 내려왔다 간첩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군사 정권들의 무자비한 전향공작을 버텨내다가 1989년 사상 전향서를 쓰고 31년 5개월 만에 가석방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후 정씨는 이 모임, 그리고 여러 진보적 모임에 열심히 참석해 힘을 보태주곤 했다.

●강제전향 이유로 고향 못가

그러던 정씨의 삶에 중요한 변화가 생긴 것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이 역사적인 6ㆍ15선언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6ㆍ15선언에는 비전향 장기수들을 전원 송환한다는 전향적인 내용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서 결혼해 부인과 4자녀를 두고 있는 정씨는 고향으로 돌아가 죽기 전에 가족들을 만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그 해 9월 63명의 장기수가 판문점을 넘어 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씨는 다른 32명의 장기수와 마찬가지로 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전향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와 종교단체들은 정씨 등의 전향이라는 것이 수많은 장기수들을 죽음으로 이끈 살인적인 고문에 의해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된 전향이라며 이의 무효화선언과 송환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전향 장기수는 송환대상이 아니라는 무성의한 형식논리로 송환 요구를 거부해 오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안 고령으로 4명이 목숨을 잃음으로써 송환대상자는 28명으로 줄어들었다. 정씨 역시 암이 걸려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아 병상에 누워 눈물을 흘리는 사진이 한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사실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군사독재 정권들의 전향공작은 국가 기관이었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전향공작에 저항하다가 옥사한 장기수들에 대해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인정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물론 이는 원칙적으로는 맞는 주장이지만 국민정서를 고려하면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 소지가 있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같은 결정이 적합한 판단이었느냐와 상관없이 국가기관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릴 정도로 전향공작은 무자비했고 이에 기초한 정씨 등의 전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강제된 전향이었다는 사실이다.

●남과 북 인도적 송환해야

따라서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정씨 등 북한행을 원하는 남은 장기수들을 가능한 한 빨리 북한으로 보내줘 북의 가족들과 늦은 송편이라도 먹게 해줘야 한다. 언제까지 이들이 한 명씩 목숨을 잃음으로써 이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인가?

우리만이 아니다. 북한도 북한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한국전쟁 포로 등 남한행을 원하는 고령의 북한 내 남한 연고자들을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전향적으로 송환해주어야 한다. 이는 이 문제에 한나라당이 주장해온 상호주의를 적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에는 국경도, 이념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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