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재정_감세, 식량안보_시장개방 등 양립할 수 없는 정책목표들이 난립하면서 우리 경제ㆍ사회의 주요 안전성 지표가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20일 재정경제부와 농림부 등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과 식량자급률 등이 최근 2~3년간 급속히 악화, 국제적으로 공인된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국가채무의 경우 2001년(122조원)까지만 해도 GDP의 19.6%에 불과했던 것이 올해는 30.1%에 달할 전망이다.
국제적으로 재정건전성이 우수한 그룹에 속하려면 국가채무가 GDP 대비 30% 미만이어야 한다. 이에 따라 기획예산처는 우리나라 국가채무 비율을 30%내로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식량자급률 역시 안보를 우려해야 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4년 곡물자급률이 전년(27.8%)보다 1%포인트나 하락해 26.8%를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이 식량안보와 농촌사회 유지 등을 이유로 정한 최소한의 자급률 목표치인 30%를 크게 밑도는 것이다.
국가 성장잠재력의 기본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출산율도 세계 최저수준까지 하락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여성의 출산율은 1.1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았다.
문제는 야당은 물론이고 정부ㆍ여당에서도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정책을 동시에 추구하는 바람에 이런 사정이 개선될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장기적 전략목표(재전건정성ㆍ식량안보ㆍ출산률 등)를 달성하려면 단기 목표(조세부담ㆍ시장개방 등)의 희생이 불가피한데도, 장ㆍ단기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 오류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국가채무 급증을 질타하면서도,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감세정책을 동시에 주장하고 있다. 재경부에 따르면 야당과 이해관계자 집단의 요구로 정부가 깎아준 국세 규모가 2000년 13조2,800억원에서 2004년에는 18조6,000억원으로 5조원 이상 늘었다.
재경부 관계자는 “전체 국세 중 감면비율을 중장기적으로 10%대까지 낮춰야 한다는 게 실무자들의 판단이지만, 여건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세감면의 대폭 축소가 골자인 내년도 세제개편안이 당정 협의과정에서 흔들리고 있는 점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식량안보와 출산율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식량자급률은 농산물 시장개방과 반비례하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타결될 경우 농산물시장의 개방 폭은 더욱 확대될 수 밖에 없다.
출산율을 끌어 올리려면 미혼자 대신 기혼자와 기혼가정에 대한 정부지원이 강화돼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8ㆍ31 부동산 대책에 종합부동산세의 ‘세대별 합산과세’ 방침이 포함돼 서로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개별적으로는 타당성이 있지만, 전체적 관점에서는 장기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정책들을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한정된 자원을 어떤 원칙에 따라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그에 따른 새로운 국가전략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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