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북핵 폐기 합의는 2002년 2차 북핵 위기 발발 이후 처음으로 위기 해소의 단추가 꿰어졌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단추가 꿰어졌다’는 상투적 표현만으로 이번 합의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합의 이후 한반도 정세의 물줄기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합의는 북핵 해결의 목표점과 원칙을 명시한 것으로 평할 수 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대북 관계정상화와 평화적 핵 이용권을 약속한다는 것이 골자다.
결국 11년 전 1차 북핵 위기를 마무리지은 북미 제네바 합의 때처럼 북한은 재차 핵 포기를 선언했고, 관련국들은 보상과 상응조치를 확약했다.
관건은 이행 여부다. 현재 전망은 제네바 합의 때보다는 이행 가능성이 높다는 쪽이다. 남북한 등 한반도를 둘러싼 6자 모두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합의가 차질 없이 이행된다면, 북한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등장하고 한반도는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 한국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을 대북 중대제안으로 돌파했고, 고비 때마다 북미 양측을 설득해낸 것은 ‘주도적 역할론’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 했다. 어찌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문제는 우리가 푼다’는 민족자결의 논리가 실천됐다고 볼 수 있다.
9ㆍ19 합의는 이전과 이후의 한반도 정세를 확연히 가를 것이다. 남북, 북미, 북일 관계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 우선 북한은 북핵 부담을 털어내고 경제협력, 한반도 평화정착 논의를 질적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북미간에는 관계정상화를 준비하는 수순이 진행될 것이며, 이에 발맞춰 북일 관계도 해빙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단초가 마련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6자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포럼 개최를 약속함으로써 전쟁없는 한반도를 향한 거보도 내딛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1막 1장’일뿐이라는 시각도 많다. 핵 폐기 대상 지정,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HEU)의 존재 및 시인 여부, 경수로 제공 문제 등 예상되는 암초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미 등 6자가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런 암초들은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선(先) 핵 폐기’에 반대했던 북한이 경수로 논의 약속을 담보로 핵 폐기에 합의하고, 경수로 건설을 반대하던 미국이 타협적 자세를 취한 태도가 낙관론의 토대가 되고 있다
베이징=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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