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진통 끝의 출산’
19일 4차 6자회담의 공동성명 채택과정은 이렇게 요약된다. 극적인 막판 대반전이었다. 회담 속개 일주일만이며, 2002년 10월 한반도에 먹구름을 드리운 제2차 북핵위기가 터진 지 35개월만이다.
2단계 회담은 지난달 7일 휴회한 1단계 회담의 끝자락에서 시작한 만큼 쟁점은 단순 명확했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과 경수로 지원 문제를 두고 북미는 상대를 벼랑으로 내몰 듯이 기세싸움을 벌이면서도 등 뒤에선 치밀하게 주판을 퉁기며 두뇌 싸움을 했다.
그러나 북미간 입장차가 워낙 커 회담 기간 대부분 동안 타결 전망은 어두웠다. 회담 첫날 북한이 6자회담 틀내 경수로 지원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강하게 거부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15∼16일 잇따라 기자회견을 갖고 장외공방을 본격화하자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미국의 힐 수석대표도 “경수로 문제는 논의조차 돼서는 안 된다” 고 연일 목소리를 높였다. 회담장 안팎에서는 ‘협상 결렬’ 전망이 확산됐다.
의장국인 중국이 16일 4차 초안 수정안을 배포하며 24시간 내에 최종 입장을 결정하라고 주문하면서 회담은 파국으로 치닫는 듯 했다. 이어 최종 데드라인이 17일에서 18일, 다시 19일로 세 차례나 연기됐지만 북미간 입장차가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남은 것은 ‘휴회’ 아니면 ‘결렬’의 수순 뿐인 듯 했다.
그러나 북미 모두 판을 깨는 것은 부담스러웠을까. 18일 오전 4차 초안 수정안에 대해 “모호성을 줄여야 한다”고 불만을 표출했던 힐 대표는 같은 날 저녁 “좋은 안”이라며 미묘한 태도 변화를 보였다. 다른 참각국 대표들은 “내일은 무조건 결판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미국에 머물던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수정안을 받아들일 것을 강하게 설득하던 때였다.
그러나 19일 오전 8시 30분(현지시간)으로 예정된 전체회의가 또다시 지연되자 “결국 파국을 맞는 것이냐”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회담장인 댜오위타이에선 각국 대표단이 복도를 뛰어다니며 분주한 막판협상을 지속하는 모습이 포착됐고, 오후 1시가 넘어서자 “6개국 대표단의 기립박수 속에 타결됐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베이징=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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