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타결된 4차 6자회담 공동성명은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이 타결한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대체하게 된다. 북미 제네바합의가 북한 영변의 핵 개발 의혹으로 촉발된 1차 북핵 위기를 봉합하는 의미였다면, 이번 공동성명은 2002년 10월 이후 다시 불거진 2차 북핵 위기 해결을 목표로 하는 합의문이다.
제네바 기본합의는 1980년대 말 프랑스 인공위성에 포착된 북한 영변의 핵 시설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줄다리기 끝에 성사됐다. 하지만 제네바합의에 규정된 것은 핵 폐기가 아닌 동결이었고, 대상도 평북 영변의 5Mw급 실험용 원자로, 건설 중인 50Mw급 원자로, 핵 연료봉 공장 등 5개 시설에 불과했다. 북한이 새로운 원자로나 핵 관련 시설을 북한이 건설할 경우 미국은 문제제기를 하기 애매한 입장이었던 셈이다.
결국 2002년 10월 북한을 방문했다 돌아온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2차 북핵 위기가 발발한 것도 이 같은 모호한 합의 탓이었다.
때문에 6자회담 공동성명과 제네바 기본합의서는 차이가 크다. 이번의 경우 제네바 합의 당시 폐기대상에서 제외됐던 ‘과거 핵’도 포함됐다. 북한의 모든 핵 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폐기 범위로 명시, 추후 말썽의 소지를 줄인 것이다.
두 합의 모두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정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북미 상호간 불신 속에 정치적 합의 성격으로 작성된 제네바 합의서와 달리 공동성명은 미국 뿐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모두 참여하는 다자 보장의 형태다.
북한과 미국의 약속이 어느 한쪽의 이탈에 의해 합의가 쉽게 파기될 수 있었던 구조적 불안정성이 해소될 수 있게 됐다. 한국 미국 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의 대북 에너지 제공,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별도 포럼 구성, 북일 수교협상 재개 등을 공동성명에 담을 수 있던 것도 다자간 합의였기 때문이다.
또 94년 당시엔 협상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한국이 4차 6자회담에서는 상당한 역할을 한 부분도 평가할 부분이다. 대북 200만kw 전력 송전제안으로 협상 돌파구를 마련하고 협상 막바지 미국과 북한을 중재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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