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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연정보다 국민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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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연정보다 국민을 보라

입력
2005.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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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회동을 계기로 대통령이 불쑥 제기했던 연정을 둘러싼 파문은 일단 잦아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심의 동요가 완전히 가라앉은 것 같지는 않다. 대통령이 연정론을 제기한 까닭이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힘든 판국에 대통령이 왜 정치적 파문을 일으키는지 많은 국민이 의아해 하고 또 혼란스러워 한다. 야당은 대통령의 궁극적 정치적 노림수가 무엇인지 캐어 보느라 여념이 없다. 심지어 여권 내에서조차 대통령의 진의를 몰라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정치학자의 입장에서 대통령 발언의 배경을 순수하게 추론해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대통령의 고민은 한국 권력구조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에 기인한다. 그러나 연정론은 그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이 아닌 듯하다.

●야당협력 이끌어낼 고육책인듯

대통령제는 권력분립을 민주성의 기초로 삼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간의 견제와 균형이 민주적 대통령제의 핵심을 이룬다.

이때 소위 여소야대의 상황이 대통령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위협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따라서 권력분립의 민주적 이상을 어떻게 효율적 국정운용이라는 현실적 목표와 조화시키느냐가 성공적으로 민주적 대통령제를 운영하는 데 관건이 된다.

미국과 프랑스 같은 선진 대통령제 국가들은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도적, 관행적으로 확립해놓았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들이 민주화 이후 이 문제에 대처한 방식은 대단히 후진적이고 탈법적이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아 왔다.

한국 대통령들은 인위적인 정계 개편을 통해 거대 여당을 급조하거나 공천권의 절대적 행사를 통해 여당 의원들을 장악하고, 불법적으로 거둬들인 통치자금을 뿌려서 여야 정치인들을 회유하고, 또 권력기관과 정보기관을 활용해서 정치인들을 협박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 국회를 장악하고 자의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려 해왔다.

노 대통령은 취임 후 이러한 방식으로 통치력을 행사하는 것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는 여당의 공천권을 포기했으며 불법 통치자금을 모아 정치권에 뿌리는 일도 중단했다. 권력기관이나 정보기관을 활용해 정치권을 압박하려 시도한 흔적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고민은 국정운영에 대한 국회의, 특히 야당 의원들의 협력을 이끌 다른 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 대연정의 제안이라든가 권력을 통째로 가져가라는 등의 발언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즉 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권력분립의 민주적 이상을 유지하되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효율적 국정운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한국적 해법을 찾아보려는 시도로 읽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제안한 해법은 상대가 응해 주지 않으면 좌절할 수 밖에 없는 해법이다. 당신을 사랑하니 결혼해 달라고 아무리 간절하게 애원해 본들 상대가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데 결혼에 응해 줄 리 없다.

한국의 헌정 질서 하에서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하지 않는 한 권력을 통째로 넘겨 줄 수도 없다. 총리와 각료를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임할 수 있는 상황에서 총리와 장관을 야당 뜻대로 해 보라고 한다고 이를 받아들일 만큼 한국 야당이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의 지지’만이 해답

결국, 대통령은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해법은 정치권에 있지 않고 국민에게 있다. 정치권의 협조를 구하기에 앞서 국민을 우선 이해시키고 설득해서 지지와 지원을 호소해야 한다. 이 원칙은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모든 국정과제에 적용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훌륭한 정책도 야심 찬 개혁안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않는 한 추진력을 얻을 수 없다. 대통령과 정부가 왜 저러는 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국민에게서 들릴 때 이미 그 시도는 실패한 것이다. 국민의 이해와 국민의 지지만이 비민주적 통치수단을 과감하게 포기한 노 대통령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다.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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