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우리의 한자 실력을 한번 점검해 보자. 成吉思汗. 무슨 말일까? 이룰 성에 길할 길, 생각 사, 땀 한이라…. 성길사한. 길한 것을 이루면 땀을 생각한다? 아니지, 말이 안돼. 그럼 고사성어인가?
칭기즈칸을 중국인들이 한자로 음사한 표기이다. 중국어 발음은 ‘청지쓰한’.
칭기즈칸은 몽골인의 영웅이지만 이 청지쓰한은 중국인의 영웅이다. 대한민국 국가 기간 방송인 KBS 홈페이지에도 그렇게 돼 있다. 내일로 3회째인 30부작 드라마 ‘칭기즈칸’(원제는 成吉思汗)의 줄거리 소개(http://www.kbs.co.kr/drama/genghiskhan/index.html)를 보자. “끝없는 전쟁들로 전 세계가 혼란에 휩싸였던 13세기. 중국의 작은 군소 국가들은 하나의 거대한 대국으로 통합되었으며 군집된 힘을 바탕으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중국의 놀라운 저력 뒤에는 몽골 부족의 영웅이자 모든 중국인의 영웅, 그리고 연 왕조의 시조로 알려진 칭기즈칸의 통치력과 군사적 지략이 있었다.”
원을 연으로 잘못 쓰고 13세기에 ‘중국의 작은 군소 국가들은 하나의 거대한 대국으로 통합되었’다는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를 이 광고문의 지적 수준은 거론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중국인의 영웅’이라는 강변은 중국 공산당 집권자들의 박수와, 몽골인민공화국 국민들의 분노와, 역사를 바로 아는 모든 상식인의 개탄을 동시에 받을 만하다.
청지쓰한은 ‘중화민족의 영웅’이 돼 버렸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몽골 대통령과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이 주장하는 중화민족이란 한족과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 거주하는 55개 소수민족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래서 광개토대왕도 중국인의 조상 중 한 명이 되고 따라서 현대식으로 말하면 중국인인 셈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모든 드라마가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중국인들이 “칭기즈칸이 중국인이라는 것은 한국인들도 인정한다. 우리가 만든 칭기즈칸 드라마 30부작이 대한민국 공영 TV에서도 방영되지 않았는가?”라고 하면 뭐라고 할 것인가?
“중국 중앙정부는 소수민족의 인물을 부각시키는 칭기즈칸 방영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대만과 홍콩에서 방영된 후 작품의 우수성을 확인하고 2004년 CCTV 방영을 결정했다.”(홈페이지 제작과정 설명 부분)
CCTV는 중국 국영 중앙방송으로 공산당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통제의 기본은 “중국을 하나로 묶는다”는 정책에 부합하느냐이다. “우수성을 확인”했다는 것은 거기에 딱 들어맞는다는 이야기이다.
칭기즈칸은 평소 “남쪽에 중국이 있음을 아침마다 자손들에게 상기시켜라”라고 했는데 과연 그 말이 맞았다.
이제 결론을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다.
접자. 잘못을 알았으면 바로 고치는 것이 한국의 BBC를 지향하는 방송다운 태도다. “몽골의 고려 침략은 칭기즈칸의 손자 때 일로 칭기즈칸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식의 변명은 스스로 얼마나 멍텅구리인지를 입증하는 자해행위일 뿐이다.
칭기즈칸 드라마를 꼭 내보내고 싶다면 1993년 현대 몽골 건국 70주년을 기념해 벡진 바르지냥 감독이 만든 영화 ‘칭기즈칸’을 방영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시청료를 내는 국민들이 이 드라마 홈페이지에 올린 1,547건(15일 낮 1시 현재)의 질문에 KBS는 성실하고, 정직하게, 빨리 답해야 한다.
이광일 기획취재부장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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