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핵폭탄(Mini-Nuke)
‘미니 뉴크’. 이름만 들으면 무척이나 귀엽다. 우리 말로 그 어감을 적절하게 번역하기 어렵지만 무시무시한 위력을 숨기기 위해 ‘꼬마(Mini)’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였고, ‘핵폭탄(Nuclear Bomb)’ 이란 말 대신 짧게 ‘뉴크(Nuke)’라고 부른다.
요즈음 한창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하관통 핵무기를 부르는 이름이다. 땅을 뚫고 들어가 폭발하면 그 충격과 진동으로 땅속 깊숙한 곳에 건설해 놓은 시설이 파괴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핵에 대해 물어 본다면 틀림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제조하고 있는 핵무기, 그 핵무기를 제거하려고 혹시 미국이 벌일지도 모르는 군사작전, 그리고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남한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 등을 얘기할 것이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이 열리다 말다 한다. 13일 속개된 2단계 4차 6자회담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 국민이 우리처럼 농축 우라늄이니 플루토늄이니 핵폭탄이니 하는 소리를 매일 들으며 살고 있을까?
전쟁에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
핵무기는 전쟁에서 실제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 그 자체로 상대의 도발을 방지하는 억제전력이었다.
상대방이 도발을 해올 경우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철저히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함으로 상대가 도발을 단념하도록 하는 목적이다. 미국은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하여 전쟁에서 군사적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
새로운 핵무기 미니 뉴크의 개발에 착수하고 이를 2005년도 예산에 포함했다. 지하에 구축된 견고표적(HDBT)들을 핵 폭탄으로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GBU-28, GBU-37 등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공중투하 지하관통 폭탄으로는 이렇게 깊게 묻힌 견고표적들은 파괴할 수 없다. 약 300kg의 고폭약 충진 탄두가 콘크리트 구조물의 경우 6m, 보통의 지반일 경우 30m 정도 땅을 뚫고 들어가 폭발한다. 깊지 않은 땅속에 건설된 표적들만 파괴할 수 있을 뿐이다.
약 50발 정도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지하관통 핵폭탄(B61-11 EPW)도 효과가 별로 없다. 340kt(TNT 34만톤의 위력)급 핵 폭탄이 3m쯤 땅을 뚫고 들어가 폭발하면 지하 약 70m 깊이에 있는 견고표적을 파괴할 수 있다.
보통의 핵 폭탄은 주로 공중에서 폭발하거나 지면에 접촉하면서 폭발한다. 하지만 공기와 대지의 밀도차이가 크기 때문에 충격과 진동 대부분이 지상으로 퍼지고 지하 표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그 핵폭탄이 만일 지하 3m에서 폭발한다면 지상 폭발의 경우보다 지하 표적에 미치는 진동 및 충격 효과가 10배로 커진다.
지하관통 핵폭탄의 성능
미국 내셔날 아카데미가 법(Public Law 107-314)의 규정에 따라 수행한 지하관통 핵폭탄의 효과에 대한 연구보고서가 있다. 도출된 9가지 결론 중에는 미니 뉴크가 지하 표적 파괴에는 큰 효력이 없고 재앙적인 핵 폭발로 피해만 발생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지하 깊은 곳에 있는 표적을 파괴할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핵 폭탄이 뚫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폭탄이 지반을 뚫고 들어가려면 높은 속도가 필요한데 속도가 너무 높으면 폭탄의 케이스가 변형되어 목표 위치에 도달하기 전에 녹아버린다. 지반을 뚫고 들어가는 관통력과 탄두의 금속재질이 견딜 수 있는 물리적 한계는 지하 10 ~ 20m로 계산된다.
지하에서 일어 나는 핵 폭발은 분화구 형상의 커다란 웅덩이를 남기며 방사능 물질을 대량으로 지상에 분출 시킬 것이다. 지상분출을 없게 하려면 지하에 모든 방사능 물질이 갇혀 있을 만큼 충분한 깊이에서 핵 폭발을 일으켜야 하는 데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핵폭탄의 지하 관통 깊이 뿐만 아니라 투하된 폭탄이 땅을 뚫고 들어가는 위치의 정확성도 대단히 중요하다. 300kt급(TNT 30만톤의 위력) 핵폭탄의 경우 반경 110m이내의 지하에 표적이 있어야만 파괴할 수 있다.
핵 전략의 변화
지하관통 핵폭탄의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고, 오히려 핵폭발에 의한 대량살상이나 방사능 오염의 위험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개발하겠다는 미국의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국의 패권 유지전략을 이해해야만 알 수 있다.
핵을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하고, 미뮌?누리는 군사적 우위에 대한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지하견고표적 파괴라는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느냐 못하느냐는 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전쟁에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다는 점이다.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변화하기 시작한 미국의 안보전략과 국방정책이 9ㆍ11 테러 이후 확고하게 전환됐다. 어떤 나라가 어떤 위협을 미국에 대해 행사하는지 판단하여 대응 계획을 세우는 것을 ‘위협에 근거한 대응’이라 부른다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만한 것이 무엇이냐는 기준에 따라 대응을 하는 것을 ‘위협 수단과 능력에 따른 대응’이라 부른다.
쉽게 말하자면 누가 칼을 가지고 나를 위협할 것이냐를 따지다가, 이제는 칼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든지 다 위험한 사람이라는 논리로 바뀐 것이다.
세계적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한 결과이다. 패권 유지와 확대를 위한 수단에는 한계가 없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TV 드라마의 궁중 사극에서 최고 권력자인 국왕이 왕위를 지키기 위해 주변의 그 누구도,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들 마저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미국의 우방국 어느 나라가 군사력을 무한정 확대하고 최신 군사무기로 무장한 첨단 군사력을 확보하려 한다면 미국이 지켜만 볼 것인가? 그 우방국이 보유한 첨단 무기나 군사력을 제어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 한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선을 넘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갖겠다는 핵무기라는 수단에 대해 미국은 다른 나라와 사고의 바탕이 다르다. 현재 진행 중인 6자회담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북한은 미국을 공격할 뜻도 능력도 없으며 단지 자위 수단으로,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리로 핵을 보유한다고 계속 주장할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북한이 보유하는 소규모의 핵 전력이 미국에게 위협이 될 수준은 아니라고 내심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현실적 위협이라고 판단한다. 북한이 보유하는 핵무기는 실제적으로 위협이 되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제거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만일, 그것이 북한이 아니고 우리 남한이라면 미국이 옹호하고 지원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둘도 없는 우방국이라고 굳게 믿는 미국이지만 어떤 군사무기나 기술은 절대로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 혹시 알고 있다 하더라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인다.
북한의 핵무기를 고리로 삼아 미국은 2중 목적의 게임을 벌이고 있다.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하게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제거하자는 문제로 6자회담이 교착되고 결렬되어도 미국은 잃는 것이 없다.
북한은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할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 북한을 활용하는 미국의 카드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시험하고 제어하면서 이 지역에 미국 군사력을 전개하는 정당성의 근거이다. 북한 카드를 이용하여 미니 뉴크까지 개발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이 핵 균형을 이루며 대치하던 냉전은 끝났지만 세계는 크고 작은 많은 전쟁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미국은 그 전쟁 대부분에 개입했다. 미국이 계획대로 미니 뉴크를 확보하면 앞으로 발생하는 전쟁에 그 핵 폭탄을 사용할 것이다.
핵무기를 갖지 않았던 국가들도 방어용이든 억제용이든 핵무기를 보유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미국이 실제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날, 핵 확산방지 체제는 완전히 붕괴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인류 역사상 첫 번째, 그리고 또 두 번째 핵무기를 사용한 나라로 기록될 것이다.
핵무기는 북한이 갖든 미국이 갖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새로 수립한 안보전략에 따른다면 그렇다. 어느 나라의 핵이든 인류에게 모두 위협이 된다. 꼬마 핵폭탄의 걸음을 통해 바라 본 인류의 미래는 어둡고 음산하기만 하다.
윤석철객원 기자 ys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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