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만큼 오래 기다려 학교에 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제 친구들도 학교에 보내주세요.”
말 뿐인 빈국 지원 약속을 내놓는 선진국 지도자들에게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유엔 정상회의 개막에 맞춰 멀리 케냐에서 뉴욕으로 날아온 85세의 키마니 은강가 마루게 할아버지.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기네스북이 공인하는 세계 최고령 초등학생이다.
마루게 할아버지는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탔다. ‘액션 에이드’ 등 NGO들이 그의 뉴욕방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는 가난 탓에 학교 문턱을 밟지 못하는 전세계 1억1,500만 어린이가 유엔에 보낸 특명전권대사이기도 하다. 2015년까지 전세계 모든 어린이에게 기초교육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유엔 ‘밀레니엄 개발 목표’의 지원금 약속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게 임무다.
13일에는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맨해튼을 누비고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부인 난 여사를 만났다. 세계 각국 어린이들이 만들어 보내준 10만개 종이 인형도 이번 여행에 동행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지난해 1월까지 학교에 다닐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케냐 정부가 2003년 초등교육을 무상으로 전환한 것을 계기로 늦깎이 배움의 길을 트게 됐다.
입학할 때만 해도 연필 잡는 법도 몰랐지만 지금은 초보수준이나마 스와힐리어로 읽고 쓸 줄 알게 됐다. 손주들보다 어린 반 친구들과 다른 점이라면 보청기를 끼고 지팡이를 짚고 등교한다는 것. 손주 30명 가운데 둘은 같은 학교 상급생이다.
“배움은 곧 자유입니다.” 할아버지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 격언을 전파하고 있다. 입학한 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그 증거라는 것이다. 그에겐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이 생겼다.
미국에 어려운 발걸음을 한 김에 에이즈 퇴치를 위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만나보고 싶어한다. 아들딸 15명을 낳고 상처한 홀아비인 할아버지는 내친 김에 부유한 미국인 여성과 결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처럼 등록금 폐지로 학교 교육을 받게 된 사람은 케냐와 우간다, 탄자니아에서만 700만 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밀레니엄 개발 목표’는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첫 5년간 초등교육에서 남녀 차별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아직도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1억1,500만 아동 가운데 60%는 여성이다.
또 80%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빈국에 몰려있다. ‘액션 에이드’ 등 단체들은 선진국들이 빈국에 대한 지원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엔은 2015년까지 9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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