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 경제도 날씨마저도 시원시원한 게 없는 요즈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외국에서 활약하는 우리나라 운동 선수들이다.
박찬호와 박세리가 IMF 시절의 스트레스를 풀어주었듯이, 요즘은 박지성과 이영표, 서재응과 김선우, 그리고 LPGA의 한국 낭자군은 잊을 만 하면 한번씩 좋은 소식들을 전해준다. 굳이 한일 월드컵 때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스포츠가 우리 일상의 청량제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신문과 방송은 이 청량제에 이상한 조미료를 타서 팬들을 오히려 불쾌하게 만들곤 한다. 더 이상한 건 스포츠에 관한 보도나 중계는 정치나 경제에 관한 것만큼 엄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태도이다. 오보를 정중하게 사과하는 일도 많지 않거니와 소위 전문가의 말이나 글도 일반적인 팬들만 못 한 경우가 많으니.
야구나 축구경기가 열린 뒤 정말 그 경기의 내용에 대해 알고 싶다면 신문이나 방송보다 관련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훨씬 더 자세하고 풍부하고 전문적인 해설을 볼 수 있다. 뉴스의 어떤 분야도 이렇게 ‘일반인’들의 지식과 정보가 미디어를 능가하는 경우는 없다.
해외 한국선수들이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기쁜 일이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은 그 선수 개인에만 초점을 맞출 뿐 경기 자체나 스포츠 전반에 관한 내용에는 큰 관심이 없다.
몇 년 전에 비해 많이 나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박지성의 활약만 보도하고 맨유 경기의 결과는 잊어버리든지 서재응의 연승만을 강조하다가 메츠의 연패는 끄트머리에 잠깐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월드컵 보도에서만 국수주의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한국 투수들이 합쳐서 30승을 할 수 있다든지 한국 골프선수들 우승을 합치면 소렌스탐과 맞먹는다든지 하는 보도의 발상이 궁금하다.
그런데 국수주의의 정 반대편에 있어야 할 사대주의도 함께 녹아있는 것이 스포츠 보도이다. 외국에서 활약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전해주면서 국내 스포츠, 특히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국내에 ‘스타’라고 말할 수 있는 운동선수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
스타들이 모두 외국에 나갔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포츠신문 1면은 항상 메이저리그나 프리미어리그로 채워지고 지상파 방송의 중계나 뉴스는 항상 외국의 (혹은 외국과의) 경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국내파 스타가 생겨나기 어려운 것이다.
스포츠 중계나 보도가 국수적 사대적 성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시청자나 독자의 취향을 고려한다면 마냥 신문과 방송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옳은 보도’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현실화 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항상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극적인 사건 사고기사를 재미있어 한다고 그런 뉴스만 키운다면 옐로우 저널리즘의 부활이 될 뿐이다. 스포츠를 특별 취급할 이유는 없다. 거기에도 옳은 취재방식과 옳은 보도와 편집이 있다.
옳은 보도의 기본 조건은 정확성과 전문성이다. 대충대충이 통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뉴스가 아주 초보적이던 시절, 아직 완주하지도 않은 한국 마라톤선수가 3등을 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 실은 신문사가 있었다. 결국 이 선수는 5등에도 들지 못했지만 그 언론사는 오보를 서둘러 내렸을 뿐 사과 한 마디 없었다.
연초에 김병현 선수의 콜로라도 이적이 확정된 순간까지도 특종이라며 ‘애리조나 이적’을 머릿기사로 실은 스포츠신문이 있었다. 물론 정정기사는 없었다. 얼마 전 월드컵 축구 예선에서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부적절하고 부정확한 말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 후 해당 방송사가 담당자를 문책하거나 시청자에게 사과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시청자와 독자들은 날아다니는데 신문과 방송은 기어 다니는 모습. 이것이 안타까운 스포츠 보도의 현실이다. 나아졌다며 자위하기도 하지만, 가끔씩 치미는 짜증과 실망을 다독거리기가 쉽지 않다. 청량제를 시원하고 맛나게 전해주는 신문과 방송이 되기를.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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