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의료분쟁 발생 시 의사에게 과실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을 지우는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법’ 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발의, 통과시키기로 한 것은 만연한 의료과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의료사고를 당하는 국민들이 상당수인데도 법적으로 보상받을 길은 극히 제한돼 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의료계 전체에 대해 갖는 불신감도 팽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모(25)씨는 1999년 5월 맹장수술을 받던 도중 대장 일부를 잘렸으나 의사가 과실이 없다고 주장해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재산상의 손해 6,400만원과 위자료 5,000만원을 받아냈다. 승소까지 6년이 걸렸다.
의료소송은 해마다 늘어나 2003년 소송 접수건수가 1,000건을 돌파했다. 하지만 김씨처럼 소송에 이긴 경우는 10%에 불과했다.
1999~2004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의료소송은 1999년 679건, 2000년 738건, 2001년 858건, 2002년 882건, 2003년 1,060건으로 늘어났다. 판결까지 간 경우를 기준으로 고소인의 승소율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의료인의 승소율(판결 기준)은 2000년 39%, 2001년 30%, 2002년 45%, 2003년 47% 등 계속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의료인도 승소율은 높지만 소송이나 분쟁에 휘말리지 않은 병원을 찾아보기 어렵고 절반에 가까운 개원의가 매년 환자와 크고 작은 다툼을 겪고 있다. 중재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부실해 의사 스스로 다툼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되는 의료분쟁건수도 해마다 늘어 2004년 800여건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소보원이 의료관련 분쟁조정업무를 시작한 99년 6월 이후 2004년 6월까지 자료를 분석해보면 2000년 450건, 2001년 559건, 2002년 727건, 2003년 661건, 2004년 상반기 392건으로 계속 증가했다.
의료분쟁이 많은 과목(2004년 상반기 기준)은 내과, 정형외과, 치과, 산부인과, 일반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안과, 흉부외과 순이었다. 의료사고 내용은 부작용ㆍ약화(藥禍ㆍ약으로 인한 사고)가 61%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은 장애 17.9%, 사망 12.5%, 효과미흡 6.4% 순이었다.
소비자 단체 관계자는 “소비자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소송과 분쟁이 많아지고 있다”며 “그러나 의료과실은 입증이 어려워 조정과 합의가 많고 중도 포기하는 피해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 "환자가 밝히기 어렵다" 피해자 입증책임 낮춰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불법행위에 대한 입증 책임은 피해자인 원고에게 있다. 하지만 의료소송에서 법원은 이미 일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비해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낮춰 주어왔다.
1995년 다한증(땀을 많이 흘리는 증상) 치료 수술을 받은 후 뇌경색으로 숨진 전모씨의 유족이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용훈 새 대법원장이 주심이었던 당시 재판부는 “의료사고의 경우 의사가 아닌 보통사람으로는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환자측이 인과관계를 입증한다는 것이 극히 어렵다”며 “환자측에서 의료행위 이전에 사고 결과의 원인이 될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고 증명하고, 병원측이 의료 과실로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고 입증하지 못한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다”고 판결했다. 환자의 입증 책임을 크게 완화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환자측이 상식적인 선에서 문제제기를 하면 담당 의사 등 의료진이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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