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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母 "아들 붙잡고 종일 물속서 울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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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母 "아들 붙잡고 종일 물속서 울기도 했죠"

입력
200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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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 ‘인간승리’ 김진호(19ㆍ부산체고 2년)군. 그의 뒤에는 또다른 ‘인간승리’인 어머니 유현경(45)씨가 있다. 14일 오전 부산 영도구 청학2동 S아파트에서 유씨를 만났다. 175㎝, 75㎏의 건장한 청년은 어머니 곁에서 한자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루 하루가 죽음과도 같았어요.” 유씨가 진호의 사진첩을 꺼내 들고는 툭 내뱉은 말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진호의 옛날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까지는 짧지않은 뜸이 흘렀다.

“아이의 첫 울음 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요. 진호는 저희에게 너무나 큰 사랑과 희망을 안겨주었어요.” 1986년 2월 28일 낮. 3.1㎏의 아이가 우렁찬 첫 울음을 토했다. 튼튼하고 씩씩했다. 남편 김기복(47)씨와 유씨는 4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행복은 절정에 달했다. 자식이 귀한 집안에 2대 독자가 태어난 것이다.

6개월 여가 흘렀을까. 여느 아이처럼 옹알이를 하거나 눈을 맞췄어야 했다. 하지만 걱정은 않았다. “조금 늦는 거겠지, 아이는 정상적으로 잘 자라고 있으니까.”

세 돌을 맞은 1989년 2월. ‘엄마’란 말조차 하지 못했다. “자폐(발달장애)적 성향이 강하다. 이대로 두면 아이가 많이 안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8개월의 예약대기 끝에 서울까지 올라와 찾았던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의사의 진단이었다.

“자폐가 뭔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진단을 받았을 당시의 절망감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이후 하루 하루는 정말 지옥이었습니다. 돌아앉아 울기를 수 천번, 수 만 번. 그대로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자식만은 결코 버릴 수 없었어요.”

3년 간의 특수기관 치료도 효과가 없었다. 부모 욕심에 무작정 넣은 일반 초등학교에서는 1달여 만에 쫓겨났다. 유씨는 ‘선생님’을 자처하며 관련서적 등을 뒤적이며 특수프로그램을 짰다. 사진을 보여주며 당시 기억을 스스로 적게 하는 사진메모 학습, 종이에 그림을 직접 그리거나 잘라 비닐로 감싸는 공작 훈련, 남들이 쓰다 버린 학습지를 주워 연습장에 오려 붙여 빈칸을 채우는 놀이 등 스스로 개발한 수업을 한시도 거르지 않았다.

당근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학습 과정에서 아이가 실수를 하면 밥그릇을 빼앗고, 편식을 하면 이틀을 꼬박 굶기기도 했다. 언어능력 향상과 식사예절 등을 통한 사회적응 훈련이었다. 효과가 조금씩 생겨나면서 아이의 투정도 늘어갔다. “아이와 약속을 해요. 잘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줬죠. 놀이공원 앞까지 갔다가도 약속을 어기면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유도한 뒤 그냥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어요.”

5살 때 처음 수영장에 데려갔다. “자폐아 특성상 처음 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물 근처에는 가지도 않으려고 했습니다. 아이를 껴안고 온 종일 물 안에서 함께 울었죠. 언제부터인지 아이가 물 속을 편안하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씩 수영을 가르쳤습니다.” 수원 북중 수영 특기생을 거쳐 2003년 11월 부산체고에 입학하면서 배내식(40) 전담코치의 체력 및 반복훈련 지도를 받으면서 ‘선수의 길’에 접어들었다.

진호는 20일부터 다음달 울산 체전준비를 위해 훈련에 들어간다. “체코대회 때 외국 코치들이 진호에게 ‘Best Swimmer’라고 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수영이 전부는 아니에요. 고등학교 졸업 후 실업팀으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와 소통하며 적응하는 ‘사회화’가 가장 큰 바람이에요. 아직도 종종 진호는 시한폭탄이나 럭비공과 같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유씨는 지난해 4월 ‘자폐아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를 출간했으며, 현재 ‘진호야, 사랑해’라는 두번째 책의 탈고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부산=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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