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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목표의 진정성과 과정의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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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목표의 진정성과 과정의 진정성

입력
200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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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인터넷 실명제’ 논쟁과 ‘도청 X 파일 공개’ 논쟁에선 참여자마다 ‘실명제’와 ‘공개’에 대해 각자 다른 정의(定義)를 갖고 논쟁에 임하는 바람에 논쟁이 겉도는 일이 벌어졌다. 논쟁에선 핵심 개념의 정의를 먼저 내려놓고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대연정’ 논쟁도 다를 게 없다. ‘진정성’ 개념에 대한 혼란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 논쟁에 임하다 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대연정에 찬성하는 이들은 지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매우 강한 사람들이고 반대하는 이들은 비교적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 것이다.

●연정 거부하자 한나라 저주

대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성만큼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이게 참 묘한 일이다. 노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진정성 결여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이런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남자 A는 여자 B를 사랑하지만, B는 A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 A는 자신이 얼마나 B를 사랑하는지 열심히 호소했다. 그게 실패로 돌아가자 A는 객지에 나가 성공을 해서 얻게 된 권력을 과시해보기도 하고 금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B가 마음을 두고 있는 C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래도 B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자 A는 급기야 자해(自害) 카드마저 꺼내들기에 이르렀다.

A에게 진정성이 있는가? ‘목표의 진정성’은 있지만 ‘과정의 진정성’은 없다.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다. ‘목표의 진정성’에 반해 A의 사랑을 받아줄 수도 있지만, ‘과정의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A의 ‘목표의 진정성’을 건강치 못한 집착으로 여겨 두려워하면서 A를 더욱 멀리할 수도 있다.

지역주의 문제에 관한 한, 노 대통령에게 ‘목표의 진정성’이 있다는 건 그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과정의 진정성’은 없었다. 다른 건 다 제쳐 놓더라도 한나라당을 대하는 태도에 일관성이 없었다. 지금도 없다. 화합과 포용을 역설했으면 상대편이 제안을 거부하더라도 계속 설득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할 텐데 즉각 협박과 저주성 발언이 뒤따른다.

노 대통령만 그런 게 아니다. 대연정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선 유시민 의원은 어느 인터뷰에서 “상대 당을 흠집 내고 증오를 조장해 국민을 분열시키는 일에 시간의 대부분을 써버리는 현실”을 통탄하면서 대연정의 필요성을 역설해놓고선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대연정 제안을 받아 들이지않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공격했다.

“지도자 자격이 없다.”“그런 사람은 절대 대통령이 안 된다.”“권력욕에 눈이 먼 것이다.”“뭘 생각하고 사는지 모르겠다.”“단세포적 얘기를 한다.”

물론 이건 조건부로 한 말이며 유 의원의 선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게 과연 화합과 포용을 역설하는 정치인이 할 소린가? 내 말 들으면 사랑하겠지만, 내 말 듣지 않으면 보복하겠다는 ‘스토커’의 행태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증오 이용한 勢규합 끝내야

나는 “상대 당을 흠집 내고 증오를 조장해 국민을 분열시키는 일에 시간의 대부분을 써버리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꿔보자는 노 대통령과 유 의원의 제안 취지엔 전적으로 찬성하며 뜨거운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그간 정반대로 행동해왔던 과거에 대해 사과하거나 해명하고 겸손해지면 좋겠다. 그래야, 최소한의 ‘과정의 진정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연정이 성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과정의 진정성’이 모든 국민에게 받아들여진다면 우리 정치가 ‘화합과 포용’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나라당에 대한 혐오ㆍ증오감으로 지지세력을 규합하는 일만큼은 이번 기회에 뿌리뽑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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