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회 의원회관의 국정감사 준비 열기가 예년 같지 않다. 17대 국회 첫 해인 지난해와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정기국회가 시작된 지 보름이 지났고 국감도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그다지 활기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달라진 분위기는 당장 의원회관의 ‘진풍경’이 사라진 데서부터 알 수 있다. 작년에는 저녁 식사 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밤새워가며 자료를 분석하다가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는 보좌진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또 심야에 버너에 삼겹살을 구워 야식을 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하지만 이번엔 밤샘 작업은 물론 주말을 반납하는 경우도 많이 줄었고, 성과를 미리 터뜨리는 보도자료도 지난해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N의원실 관계자는 “전엔 국감을 앞두고는 주말이 따로 없었지만 지난주말엔 (보좌진이) 출근한 방이 반도 안되더라”고 전했다.
이처럼 열기가 시들한 이유에 대해 국회 관계자들은 대연정과 선거구제 개편 논의, X파일 논란 등 정치적 이슈의 파괴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차피 이런 것들이 감사의 중심 이슈가 될텐데 힘들게 질의자료를 만들 필요를 못 느낀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 K의원은 “정치적 현안을 쫓아가기도 버겁다”고 말했고, 한나라당 L의원 보좌관은 “고생해봤자 기사도 안될 거라 생각하니 의욕이 안 생긴다”고 토로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작년 국감자료를 달라고 해서 수치만 바꾸는 식으로 준비하는 의원실도 있다”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열기를 주도했던 초선 의원들의 보좌진 사이에서는 “들어가는 품에 비해 별로 빛이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하다. 우리당 환노위원의 한 보좌관은 “노동현장 수십 곳을 방문해 노사 양측의 얘기를 듣고 현안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더라”며 “기본적인 일은 하겠지만 욕심은 없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한 의원은 “지난해 국감 이후 ‘너무 튄다’는 뒷말이 나오던데 밤새워 고생하면서 이런 얘기까지 들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고, 한나라당 P의원은 “중간 정도 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내년 지방선거도 한 이유라는 전언이다. 단체장 후보로 거론되는 의원들의 경우 사실상 이번 국감을 포기하다시피하고 있다는 것. 국감 때마다 ‘한 건’을 터뜨렸던 한나라당 P의원실에서는 보좌관 한명이 국감을 준비하고 있고, 우리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엔 보도자료 몇 건 내는 데 만족해야 할 것 같다”고 겸연쩍어 했다. 물론 정부측 자료 제출 지연이나 준비 기간 부족 등 이유를 대는 이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보좌진들이 맘 편히 쉬는 것도 아니다. “평균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추석 연휴를 몽땅 반납한 경우도 없지 않다. 보좌진 전원이 매일 출근키로 했다는 우리당 K의원실에서는 “딱히 준비할 것도 없는데…”라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