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에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북한측의 행태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받고 맺은 현대그룹과의 합의사항을 어기고 다른 업체에 사업 제안을 하는 이중 플레이를 하는가 하면, 금강산 관광객 수도 일방적으로 축소하는 등 비상식적인 돌출 행동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차제에 실리는 다 챙기면서도 마치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상전 노릇’을 하는 북한과의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국제적인 시스템에 의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은 1998년 금강산 사업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약 10억5,000만 달러를 대북사업에 투자했다. 이중 금강산 관광대가와 개성 2,000만평 이용권, 주요명승지 관광사업 등 7대 사업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학보하기 위해 북한에 직접 건넨 돈만 9억 달러에 달한다. 금강산이나 개성관광에 대한 권리도 당연히 현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북한은 8월25일 일방적으로 금강산 관광객 수를 하루 600명으로 제한하겠다고 통보했다.
더욱이 현대그룹의 인사에까지 개입해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의 복귀를 요구하는가 하면, 개성 본관광에 대해서는 “1인당 155달러의 관광대가를 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급기야 롯데관광에 개성관광을 제안하는 이중성까지 보였다. 북측은 “사람은 신의가 있어야 하는데, 김윤규 부회장을 그런 식으로 쫓아낼 수 있느냐”는 이유를 대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7월16일 김 부회장과 함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개성 관광 등에 합의했는데 김 부회장을 퇴진시킨 것은 곧 김 위원장과의 신의를 저버린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정작 ‘신의’를 지키지 않고 있는 측은 북한이다.
정몽헌 회장의 자살은 물론 그룹의 존폐 위기에서도 대북사업을 놓지 않았던 현대그룹은 물론 남한 국민들과의 신의는 안중에도 없는 듯 행동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돈을 받고 명문화한 현대와의 합의도 쉽게 깨버리는 행태도 신의하고는 거리가 멀다.
현 회장이 12일 김 부회장 복귀 불가를 재천명한 것도 이 같은 북한의 비상식적 행태에 더 이상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결국 공은 북한으로 넘어간 셈이지만 북측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북사업 전문가들은 북한이 현대측에 쓸만한 추가 카드가 별로 없어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상황이 호전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욱이 달러가 절실한 북한이 달러 창구라 할 수 있는 금강산이나 개성관광을 포기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황양준 기자 naigero@hk.co.kr
■ 정부 "北·현대 갈등 중재는 하겠지만…" 곤혹
정부가 14일 금강산ㆍ개성관광을 놓고 현대와 북측이 빚고 있는 갈등을 조정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평양에서 “국민적 관심과 걱정이 크기 때문에 북측과 이 문제를 협의하려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말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의 인사문제로 현대와 북측간 갈등이 불거진 이후 “민간 사업이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면서도 8ㆍ15 남북공동행사 때 서울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과 현정은 현대 회장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물 밑에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 회장이 12일 인터넷을 통해 “비굴한 이익보다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고 강경 입장을 밝히고, 13일에는 북측이 개성관광사업을 다른 기업에 제의한 사실까지 공개되는 등 사태가 악화하자 정부가 공개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정부의 중재노력은 정 장관이 회담에서는 물론이고 비공식적으로 북측의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협의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될 경우 이 문제를 담판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 노력으로 갈등이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북측이 단순히 감정적 불만을 넘어 현대의 대북사업 독점권을 빼앗아 남측의 다른 기업들과 직접 상대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 회장의 강경입장이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어서 정부의 조정 여지도 줄어든 상황이다. 정 장관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되지 말았어야 하는데”라고 토로한 데서도 국면 타개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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