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天高馬肥)는 원래 중국의 고사성어가 우리 식으로 바뀐 것이다. 중국에서는 추고마비(秋高馬肥), 풍고마비(風高馬肥)라고 한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찔 정도로 수확이 많아 좋은 계절이 아니라, 흉노 등 북방 민족의 침략이 두려운 철이라는 뜻이다. 초원에 가을 바람이 거세지고 말이 살찌면 식량을 노려 유목민이 들이 닥친다. 중원에는 그때 폭풍이 인다.
고려대 김택민 교수가 중국이 이민족에 침탈 당한 역사, 천재지변과 내란에 시달린 과거사를 모아 ‘중국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신서원 발행)를 냈다. 동아시아문화의 원류이자, 유일 강대국이라고만 알고 있는 중국의 정체성이 과연 어떤 것인지 밝히는 책이다.
저자는 유목 민족인 거란족이 70년, 여진족이 100년 이상, 몽골족이 70년, 만주족이 6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치열하게 중원을 공략했다고 지적한다. 이밖에 흉노족, 토번, 위구르 등 다섯 유목 민족들이 300년 동안 전란을 벌이며 중국사의 여러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 전란 속에서는 입에 올릴 수 없는 참극이 만연했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기원전 260년 전국시대에 조나라 군대가 장평에서 진나라 군대에 포위되어 46일 동안 굶주리다 항복했다. 하지만 조나라 군대를 모두 죽이지 않으면 다시 변란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한 진나라 군은 항복한 군사 40여 만을 모두 웅덩이에 파묻었다.
자연재해도 간단치 않다. ‘칠년대한’이 알려주듯 몇 년씩 계속되는 가뭄은 남한 면적의 4배에 가까운 중원 평원 전체를 잿빛으로 만들었다고 김 교수는 밝힌다. 일시에 쏟아 붓는 강우는 황하를 범람케 해, 평탄한 중원 평원은 마치 이번의 뉴올리언스처럼 오랫동안 물이 빠지지 않은 채 전체가 물바다가 된다. 메뚜기 떼의 피해도 엄청났다.
이런 재난은 유랑민을 양산하고 그 유랑민의 상당수는 결국 도적이 되어 반란을 일으킨다. 정국은 통제불능이기 일쑤고, 참혹한 살육과 파괴, 나아가 끔찍한 식인(食人) 상황까지 벌어졌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농민반란이라는 진나라 때 진승-오광의 난, 왕망 정권기의 녹림ㆍ적미적의 난, 후한의 황건적의 난, 수나라 말의 농민 반란, 당나라의 안록산의 난과 황소의 난, 원나라 패망의 단초가 된 백련교도의 난, 명나라 때 이자성의 난, 청나라 때 태평천국의 난은 중국의 참혹했던 역사이다.
김 교수는 최근 신문에서 워싱턴 한미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에게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국을 수백 번 침략한 나라다. 우리가 이런 뼈아픈 과거사를 어찌 잊겠느냐”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고 한다.
저자의 대답은 이렇다. 중국이 한국을 침략한 것은 한 무제 때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한사군을 설치한 전쟁, 수 문제와 양제 때 고구려를 침공하다가 스스로 멸망한 전쟁, 그리고 당 태종과 고종 때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전쟁이 전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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