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의 억척 처녀 이옥화(‘그대를 알고부터’)도 아니었다. 그 잘난 여의사 미연( ‘장미의 전쟁’)도 아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최진실(37)은 여전히 ‘스타’ 최진실이라고 우겼다. 만년 처녀, 아니면 재치 넘치는 미시족의 이미지이고 싶어했다. 엉망이 돼버린 가정사로 추락하는 자신을,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도 부정하는 듯했다. “이건 내 것이 아니야”라고 소리치는 듯했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부정과 옛 영광에 대한 집착과 조바심은 그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고, 연기자로서의 추락까지 부채질했다. 이옥화는 요령부득이었고, 12년 전 ‘질투’의 풋풋한 연인의 미래이고 싶어했던 미연은 아귀가 맞지않는 톱니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은 것은 상처투성이인 삶의 잔해들과 사람들로부터의 무관심과 냉소뿐이었다.
그리고 1년 뒤, 최진실은 KBS 2TV ‘장미빛 인생’의 맹순이로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분명 변했다. 아니 변했다기보다 그녀 표현대로 ‘죽어있던’ 최진실이 살아난 셈이다. 헝클어진 퍼머 머리에 싸구려 티셔츠, 퍼질러 앉아 양푼에 담긴 밥을 꾸역꾸역 먹고 남편이 버린 사각팬티를 기워 입는 ‘망가진’ 모습 때문이 아니다.
이전에도 이런 억척 아줌마 최진실은 있었다. 다르다면 맹순에게는 ‘척’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남편의 외도와 이혼 요구에 흘리는 눈물과 써대는 악은 분명 최진실 자신의 것이다. 맹순이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맹순이가 돼버린 최진실에게서 시청자들은 최진실이란 인간의 냄새를 느낄 것이다. 맹순이를 통해 최진실을 보고, 최진실에게서 맹순을 본다. 그러면서 그동안 모질었던 그녀에 대한 시선도 연민과 사랑으로 바뀐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철저하게 계산된 선택과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맹순은 처음부터 너무 깊숙이 그리고 생생하게 최진실에게 들어왔다. 최진실이 이처럼 맹순을 자기 가슴에 흔쾌히 받아들이게 한 것은 바로 절망이 아닐까. 철저히 절망하고 났을 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났을 때,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배우는 남이 아닌 자신의 몸짓을 시작하고, 결국 어떤 인물을 만나더라도 눈빛과 표정 하나하나에 자신의 진실을 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진실의 힘은 오래 갈 것이다.
연극에서 유망주로 각광받아 방송으로 옮긴 후, 나락으로 떨어졌던 최민식이 그렇고, 스타 대접을 버리고 김기덕 감독의 저예산영화 ‘해안선’에 스스로 몸을 던진 장동건도 비슷하다. 배우들이여, 추락을 두려워하지 마라. 땅에 내동댕이쳐지면 모두 버리고 다시 일어서라. 맹순이를 보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