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났다. 3년 만이다. 그가 사람 만나기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금은 더더욱, 자기 존재와 얘기가 뭇사람들에게 드러나고 전해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 열에 아홉은 나를 알아본다. 그들의 말없는 시선이 따갑다.” 대중의 관심과 호의에 의해 스스로 거짓의 모습과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이, 그 부자유가 싫다고 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심한가 보다. “영화 촬영을 위해 지방으로 헌팅을 갔을 때였다. 모자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 끼고 다니다 점심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한참 있으니 경찰차가 와 있었다. 감독은 헌팅을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려야 하고 아무나 만나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해졌다.”
그는 시간만이 그 ‘시선’을 거두어 가리라 생각한다. “인터뷰라면 안 만나” 라고 했을 때, 아직도 그가 그 ‘시간’ 위에 서 있음을 알았다. 장관(문화관광부)에서 물러난 지 1년 2개월이 됐건만, 이창동(51)은 ‘감독’으로 완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세상으로부터 얼굴이 잊혀지기 위해 가능하면 사람을 안 만난다, 기자는 물론 영화인까지도”라고. 어쩔 수 없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한 마디 않는다. 얼굴과 말을 묻고 산다. 그래서 더욱 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그의 양해를 구해야겠다.
대화 도중 속내를 읽었는지 “그런데 왜 나를 쓰고 싶어하지”라고 물었다. 상투적인 이유들은 여지없이 박살났다. “사람들이 이창동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고 하자 “정말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그냥 지나가는 소리인데 언론이 그 이유를 확대한다. 그럼 사람들도 굉장히 궁금했던 것처럼 착각한다”고 허를 찔러왔다.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 대중에게 자신을 알릴 필요도 있지 않느냐”는 반문에는 “나중에 홍보에 필요하면 인터뷰도 해야겠지만 그 역시 사기”라는 것이다. “정확한 말일수록, 해석의 여지가 적은 말일수록 사기다. 계산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견강부회가 되겠지만 그래도 ‘대중들이 궁금해 하는’ 근황을 열거해 보자. 그는 5월말 서울 성북동의 한 자그마한 사무실을 빌려 파인하우스필름이란 영화사를 냈다. 이미 연출팀도 꾸렸다. 네번째 영화 ‘밀양’(가제)을 위해서다.
전에도 그랬듯 이창동 감독은 시나리오가 완성돼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좀처럼 작품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경남의 소도시 밀양(密陽)에 사는 한 여자의 팍팍한 삶을 그린다는 정도 밖에는. ‘밀양’ 역시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처럼 멜로라고 하니 관객의 가슴을 후려 파는 특유의 이창동식 사랑도 있겠지. 이전 작품처럼 판타지적 제목의 ‘역설’도 그대로다.
투자는 시네마서비스에서 맡았다. 영남사투리 쓰는 연기자 캐스팅 준비도 하고, 연출팀은 헌팅도 다니고 있다. 영상원 강의도 월요일로 몰아 놓았다. 그런데 장관에서 물러나면서 쓰기 시작한 소설을 접고 한 달 전부터 매달리고 있는 시나리오를 아직 탈고하지 못했다.
부스스한 긴 머리, 깊은 표정에서 막판 산고가 느껴졌다. 계획대로라면 연말에는 촬영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정작 그는 “올해 안에 못할 수도, 몇 년 뒤에 할 수도, 아니면 안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재능이 없어 잘 만들 자신도, 열정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의 또 그 가혹한 자기학대와 완벽주의가 도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공익근무’라고 이름 붙인 장관 자리가 남긴 또 다른 시선이 갖는 부담감이나 후유증 때문일까.
“아니다. 난 도달할 절대 목표도 없다. 촬영현장에서의 집요함은 태도일 뿐이다. 청소와 비슷하다. 일단 시작하면 먼지 하나 그냥 못 지나치지만 그렇다고 청소에 목을 매지는 않는다.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다. 감독은 열정으로 자기 작품에 빠져서, 내가 최고란 생각으로 영화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작업이 고통스럽다. 병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그가 보는 한국영화는 취향이 점점 고약해지고 있다. “최근 두어 편 잘 됐다고 ‘위기’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깐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을 뿐”이라고 했다. 서사는 점점 무너지고, 할리우드식 마케팅이 하나의 의미 있는 작가주의 작품을 마치 한국영화의 전부인양 과장하고, 예술영화는 여전히 설 곳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으로 돌아온 것은 “지금으로서는 영화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오락종합세트 같은 영화는 소통이 아니다. 그냥 순간 느끼고 지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영화의 소통방식은 고통스럽다. “일부러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에게 영화는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의 고통스런 확인이거나 반성들이다. 스스로 자기 영화에 도취하지 못하는 그로서는 어쩌면 운명이다. 소설을 쓰려는 것도 언어가 가진 환기력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다.
“소설과 영화 둘 다 거짓으로 하나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점은 같다. ‘서로 싸우지 말자’는 말을 위해 ‘웰컴 투 동막골’은 긴 시간 힘들어 에둘러서 온다. 그러나 영화는 영속성이 없다. 안 보면 큰일 날 것 같아도 지나가면 비디오로도 안 본다. 나올 때마다 ‘걸작’이라며 흥분하는 것도 ‘지금’ 들어오는 물결에 함몰되는 영화의 본성 때문이다. 반면 소설은 지속성을 가진다. 그래서 함부로 흥분하지 못한다. 한국 소설에 ‘걸작’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게 있나 어디 한번 봐라.”
그를 만나면 늘 답답하다. 그의 영화가 그렇듯 그 역시 상대가 원하는 달콤한 말이나 위안, 판타지를 결코 주지 않는다. 오히려 느린 말투, 무표정한 얼굴, 먼저 자신에 대한 절망과 허무의식으로 상대를 길고 어두컴컴한 터널로 이끈다. 거기에 저항해 팔을 뿌리치고 보이지도 않는 출구를 찾아 뛰면 넘어져서 상처만 입는다.
모든 욕심과 계산을 버리고 그를 따라 어둠에 익숙해져 함께 걸어야 한다. 그러면 고통까지도 편안해진다. 배우 설경구가 ‘가학성 변태’라며 끔찍해 하면서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돌아와 그와 함께 작업하기를 마다 않은 것도 여기에 있다. 힘들지만 사람들이 그와 그의 영화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대현 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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