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무더위를 대청소하는 태풍도 지나가고, 정치적 태풍인 대통령도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니, 갑자기 나라는 귀뚜라미 소리 가까이 들리고 서늘한 가을의 침묵이 호수를 이룬 듯하다.
추석 명절도 태풍 못지않은 힘을 가진지라 모두의 몸과 마음을 펄럭이게 하고, 저마다 발걸음에 바퀴를 달아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는데, 바야흐로 만남과 헤어짐의 밀물과 썰물의 교차가 가장 심한 때가 바로 이때이다.
축구와 야구 경기를 관전하다 보면 우리 인생을 스포츠란 형식을 빌려 리얼하게 재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축구의 경우, 어느 한편의 골문을 자신의 고향으로 삼고 타향을 향해 공격하고 질주한다.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고향을 지킨다. 역동적인 타향살이와 끓임 없는 귀향이 축구인 것이다.
야구에 있어 베이스도 역시 고향이다.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발전은 없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집을 만들어야 한다. 퍼스트, 세컨드, 서드 베이스, 그리고 마지막 홈인, 집으로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야구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사계절이 분명한데, 홈런을 치게 되면 급행열차가 시골 역을 무시하고 지나치듯 주자는 쉬지 않고 홈을 향해 달리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한순간의 빅뱅 속에 불사르게 되니 관중의 갈채 속에 금의환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밤낮없이 숨차게 뛰는 수많은 무명 선수들, 볼을 향해 질주하지만 발에 걸리는 것은 돌부리일 뿐, 골문은 언제나 요원하기만 하다. 기껏해야 고향도 타향도 아닌 미드필드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추석이 오고 구정을 맞게 되니 달리는 발걸음이 무거워라.
고향을 떠나 안타 한 번 쳐본 적 없는 안타까운 귀성객들, 고향 땅을 밟는 것이 어색하기만 한데, 과연 언제나 패스트볼로 날아오는 세월의 볼을 힘차게 걷어올릴 수 있을는지!
항상 애증의 만감이 교차하는 곳이 고향이다. 고향에는 왠지 편안함과 불안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한때는 무덤에서 놀던 소년이 이제는 마을 어귀 정자나무처럼 자라 엉거주춤 무덤의 풀을 뽑고 있으니, 고향에 돌아와 영원한 고향을 생각하는 것이 어찌 유쾌하기만 한 일이겠는가?
길가에 널린 돌들은 차 넣거나 방망이로 허공에 날려야 할 볼들인 것만 같은데, 인생은 벌써 후반전이요, 9회 말이라. 어디서 호루라기 소리 울렸는가? 어릴 적 보름달에 새겼던 사연들, 아직은 지워진 것 같지 않은데.
최병현 호남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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