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병태 칼럼] 클레이 大路와 맥아더 동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병태 칼럼] 클레이 大路와 맥아더 동상

입력
2005.09.13 00:00
0 0

독일 수도 베를린에는 클레이 알레(Clay Allee)라는 큰 길이 있다. 서베를린 도심을 벗어난 곳부터 최고급 주거지역 달렘과 그루네발트 옆을 지나 시 외곽 옛 미군 주둔지에 이르는 넓고 긴 대로다.

서울로 치면 강남대로 비슷하다. 여기에 명예롭게 이름을 남긴 인물은 미국인 Lucius D. Clay다. 2차 대전 뒤 베를린을 분할 점령한 미군 사령관으로 군정 장관을 겸해 흔히 ‘군인 총독’으로 불렸다.

도로와 광장마다 독일 역사 속의 뛰어난 철학자 작가 등의 이름을 붙이는 독일 사회가 패전과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점령군 사령관을 기리는 것은 뜻밖이다. 그 연유는 클레이가 서베를린의 공산화 위기를 막는 데 기여한 것이다.

●역사의 굴곡 의연하게 대처해야

클레이는 1948년 6월 소련이 동독 속의 외로운 섬 서베를린과 서독을 잇는 육상 통로를 모두 봉쇄하자, 사상 최대규모 대공수 작전을 1년 가까이 지휘해 서베를린의 생존을 지키는 데 이바지했다. 서베를린은 그걸 고맙게 여겼고, 지금도 클레이에게 부여한 영예를 철회할 생각은 없는 듯 하다.

베를린 봉쇄와 대공수 작전은 이후 40여 년 지속된 동서 냉전의 엄혹함을 예고했다. 곧 이어 한반도에서는 동족상잔 전쟁으로 분단이 고착됐고, 베를린에서도 1961년 동독의 장벽구축으로 냉전체제가 공고해졌다.

그 전쟁의 대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을 기리는 동상이 인천 앞바다를 조망하는 자유공원에 서고, 서베를린의 자유를 수호한 클레이의 이름이 도시 관통도로에 붙은 것은 모두 냉전 역사의 산물이다.

그러나 독일인들이 점령자에서 보호자로 바꿔 행세한 미국과 클레이를 마냥 은인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을 이룬 뒤 클레이 알레 주변의 미군이 철수할 때, 독일 지도자들은 분단극복에 이바지한 미군의 노고를 한껏 치하했다. 반면 언론은 “이제야 완전한 주권을 되찾았다”고 환호하는 시민들의 감동을 여과 없이 전했다.

그렇다고 독일인들을 위선적이거나 지각 없다고 볼 것은 아니다. 애초 나치 과오와 패전의 멍에를 짊어진 처지에서 거부할 수 없었던 역사의 굴곡을 의연하게 헤쳐 나온 것에 스스로 기꺼워하는 성숙된 모습을 오히려 눈 여겨 볼일이다.

1957년부터 66년까지 서베를린 시장으로 독일의 운명을 개척한 빌리 브란트는 군인 총독 클레이를 ‘베를린의 영원한 친구’로 불렀다. 냉전체제에 순응하는 것을 일찍이 거부한 좌파의 거두답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브란트는 독일 분단이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전략적 담합에 의한 것이란 사실을 직접 확인한 이다.

그는 전쟁 당시 엘베 강에서 진격을 멈춰 동베를린을 소련군에 내준 연합군사령관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된 뒤 만나 그 이유를 묻자, 베를린을 먼저 점령하지 말라고 지시 받은 사실을 솔직히 털어 놓았다고 회고했다.

브란트는 케네디에서 레이건에 이르는 미국 대통령이 베를린장벽 구축을 비난하고 서베를린 수호를 다짐했지만 분단해소 의지는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도 그가 클레이를 칭송한 것은 민족의 수도 베를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클레이는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반대하는 미국 조야를 설득하는 것을 돕는 것으로 다시 보답했다. 그게 브란트와 독일인들의 지혜였다.

●과거보다 현실의 과제가 중요

베를린 얘기가 길어졌지만, 맥아더가 우리의 운명에 미친 영향도 본질적으로 클레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2차대전 승전국의 전후 처리와 한국전쟁의 기원 등에 대한 탐구와 평가는 저마다 나름대로 타당성과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변함없는 교훈은 난폭한 역사의 흐름을 그때그때 지혜롭고 용기 있게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역사를 성찰하는 것은 늘 필요하지만, 당대에 거부하지 못하거나 순응한 역사를 바꾸려는 시도는 무모하고 어리석을 뿐이다. 흔히 그 것은 현실의 과제를 감당하는 데 도움되기는커녕, 그나마 지닌 사회의 역량을 지리멸렬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